12승 실패했지만…쿠어스필드 악몽 극복한 류현진, ‘느린 슬라이더’ 선택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일 16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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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콜로라도 방문 경기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32·LA다저스)이 1회말 2사에서 상대 3번 타자 놀런 아레나도를 상대로 던진 두 번째 공은 독특했다. MLB.com 투구 분석에서 시속 132km 체인지업으로 분류된 이 공은 여느 체인지업보다는 빨랐고, 컷 패스트볼(커터)보다는 느리고 크게 휘었다. 류현진은 경기 뒤 “시속 132~134km의 공은 느린 슬라이더였다. 커터보다 조금 느리면서 각이 큰 공을 던지려고 했다”며 이 공의 정체를 밝혔다.

mlb.com 구종 분석은 기존 투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평소 던지지 않는 구종에 대해서는 잘못 분석할 수 있다. 2016년까지 시속 132km 전후의 슬라이더를 활용했던 류현진은 2017년부터 이를 평균 시속 140km의 커터로 대체했다. 최근 3시즌 동안 던지지 않던 ‘느린 슬라이더’를 선택한 것은 쿠어스필드 공략을 위한 류현진의 묘책이었다. 2005년 쿠어스필드에서 완봉승을 거뒀던 김선우 MBC 해설위원은 “투수에게 쿠어스필드 등판은 정말 부담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 안 던지던 구종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은데 류현진의 배짱이 대단했다”고 설명했다.

환상적인 전반기를 보내던 류현진에게 앞선 6월 29일 쿠어스필드 등판은 ‘옥에 티’와 같았다. 피홈런 3개를 포함해 4이닝 동안 이번 시즌 최다인 7실점을 하며 패전 투수가 됐다. 해발 1600m인 콜로라도 덴버에 위치한 쿠어스필드는 공기 저항이 적기 때문에 타구가 멀리 나간다.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이유다. 1일 등판 전까지 쿠어스필드에서 5경기 1승 4패, 평균자책점 9.15로 부진했던 류현진은 이날 6이닝을 3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막고 악몽을 털어냈다. 류현진은 “다른 때는 6~7이닝을 던진다는 생각을 하는데 오늘은 한 이닝씩 실점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전력투구했다”고 말했다.

2회까지 타자 6명을 범타처리한 류현진은 3회 2사 2루에서 찰리 블랙먼에 우전 안타를 허용해 실점 위기를 맞았지만, 우익수 코디 벨린저의 빨랫줄 같은 홈 송구 덕분에 무사히 이닝을 끝냈다. 벨린저의 송구 속도는 155.5km에 달했다. 다저스는 9회 홈런 2방을 터뜨리며 5-1로 이겼지만, 0-0 동점이던 7회 승패 없이 물러난 류현진은 시즌 12승, 통산 150승 달성을 다음으로 미뤘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메이저리그를 리드하는 투수 류현진은 등판하는 경기마다 팀이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고 칭찬했다.

약점으로 지적됐던 쿠어스필드를 넘은 류현진은 사이영상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유력한 경쟁자 맥스 셔저(워싱턴)가 부상자 명단에 오른 가운데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서 유일한 1점대 평균자책점(1.66)을 유지하고 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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