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 생기면 한국어로 고백할래요” 이방인에게 한글이 나아갈 길을 묻다

  • 입력 2007년 10월 8일 20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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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한글' 대담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리스 아만다, 레나테 클라슨, 세르조드 백, 문민 씨(왼쪽부터).
7일 오후 '한글' 대담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리스 아만다, 레나테 클라슨, 세르조드 백, 문민 씨(왼쪽부터).
"한국 사람들은 우리보다도 한글의 우수함과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 같아요"

제 561회 한글날을 앞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 '한글'을 사랑하는 4명의 '이방인'이 모였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광운대 국제통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세르조드 백(27) 씨, 한국 만화를 번역하다 아예 한국으로 유학 온 연세대 한국학 박사과정의 독일인 레나테 클라슨(30·여) 씨, 주한미군 주최 '한국어 웅변대회' 서울지구 우승자 리스 아만다(25·여) 씨, 조선족 출신으로 노동부 산하 국제노동협력원과 사단법인 여성자원금고 등에서 귀화시험대비반 한국어 강의를 하고 있는 문민(37·여) 씨.

'한글'에 대한 공통된 애정 때문일까. 만난지 5분도 안 돼 이들은 유창한 한국어로 "언제부터 한국어를 배웠냐" "어디서 공부했냐"며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한국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글이 나아갈 길을 물었다.

○ '한글'은 감정을 표현하기에 제격

중국 태생인 문민 씨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세르조드 백 씨는 사회주의국가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한국어의 '말맛'이 상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문민 씨는 "중국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하기는 좋지만 사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을 하는 데는 어색하다"며 "감정과 뉘앙스에 따른 표현이 세분돼 있는 한국어는 남녀에 비유하면 다정다감한 '여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르조드 백 씨는 "우즈베키스탄어로는 '야흐쉬'(Good)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말이 한국어로는 상황에 따라 '좋다', '우수하다', '훌륭하다', '양호하다'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여자친구가 생기면 우즈베키스탄어가 아닌 한국어로 고백할 작정"이라며 밝게 웃었다.

한글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도 이어졌다. 독일인 클라슨 씨는 보물 1호로 망설임 없이 22살 때부터 모아온 10여 권의 한국어 단어장을 꼽았다.

단어장에는 클라슨 씨가 1999년 독일에서 처음 한글을 배울 때의 삐뚤빼뚤한 글씨부터 가장 최근에 쓴 또박또박한 글씨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국인 리스 아만다 씨는 "한글은 매우 과학적인 언어"라며 "한글을 발명하고 발전시켜 온 것에 한국인들은 강한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 영어공용화 대신 한글의 세계화에 힘써야

"영어를 공식 언어로 하자는 주장에 찬성하냐"는 질문에 아만다 씨는 단번에 "노(No)"라고 답했다.

아만다 씨는 "영어가 공식 언어가 되면 한국어에 담긴 다양한 문화들은 사라질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영어 공용화를 논하기 전에 한글을 제대로 쓰고 알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귀화 전에 중국에서 민족학교 교사를 했던 문민 씨는 "중국은 상해 등 도심으로 옮겨 간 조선족을 위한 민족학교는 허가하지 않고 동북 3성의 민족학교는 계속 폐교 조치하고 있다"며 "한국어 교육에 대한 한국 정부 차원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세르조드 백 씨는 "우즈베키스탄은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어 러시아 문자를 빌려 표기한다"며 "그런데 한국인들은 인터넷이나 핸드폰 문자에서 은어나 속어를 너무 많이 쓰는 등 한글 오염이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글날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도록 하기 위한 깜짝 제안도 있었다.

레나테 클라슨 씨는 "한글날을 모르고 지나가는 한국인도 많다던데 좋아하는 사람에게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주는 이벤트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혜진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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