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이태원 국정조사’는 해야 한다, 제.대.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3일 14시 57분


코멘트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시작도 전에 파열음이 요란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일요일인 11일 처리함으로써 국민의힘에 ‘합의 파기’ 명분을 안겨준 거다.

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3당 국정조사 특별위원들은 13일 국민의힘을 빼고라도 국조를 진행하겠다는 듯 “오늘 중으로 국정조사 복귀 의사표명을 하지 않을 시 국정조사 일정과 증인 채택에 대한 모든 권한을 야3당에 위임한 것으로 이해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국정조사에 들어가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안전한 국민, 일 잘하는 정부’라고 홈페이지에 써놓은 이상민을 감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선(先) 진상조사 후(後)문책’ 방침을 수없이 밝혔다. 충암고 후배라고 싸고도는 모습이 질투가 날 만큼 곱지 않지만, 비판이 나올수록 버티는 게 우리 대통령의 청개구리 스타일인 걸 어쩌랴.

12월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가운데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로텐더홀에서 이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2월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가운데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로텐더홀에서 이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여야 모두 국정조사 의지는 있나
그렇다면 야당 전략도 달라야 했다. 이상민을 국조 청문회 증인으로 세워놓고 조목조목 죄상을 밝혀내 대통령이 장관을 당장 자르지 않을 수 없게끔 해야 한다는 얘기다. 민주당 국조특위 위원들에게 이상민의 법적 책임을 밝혀낼 능력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국힘이 국조 파투를 은근히 바라는 듯한 모습도 곱지 않긴 마찬가지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듯 국조특위 위원 7명은 11일 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국조 보이콧 선언을 하고 싶어 죽겠지만 새해예산안이 통과될 때까진 일단 참는 눈치가 역력했다.

야당의 국조 공세가 정치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날벼락 같은 재난으로 생때 같은 젊은 목숨을 잃었으면, 그 발생과 대응과정에서 행정부 잘못이 없는지 공론화하는 것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할 일이다. 여당은 야당에서 정치쇼로 몰고 가지 못하도록 제어하며 행정부의 잘못을 따져야 마땅하다. 대통령과 행정부만 싸고돈다면 그게 ‘용궁’ 시녀이지 어디 집권당인가.
● 이태원 수사하는 건가, 덮는 건가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보듯, 우리 국민의 안전의식과 치안능력은 남부럽지 않다고 믿는다. 이상민 역시 행안부 홈피 장관 인사말에다 “행정안전부는…(중략)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국정운영의 중추부처”라고 자랑해 놨다. 행안부가 제 할일을 잘했다면…(이번엔 말줄임표) 이태원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열린 장관실’ 섹션에 “안전한 국민 일 잘하는 정부‘라고 소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열린 장관실’ 섹션에 “안전한 국민 일 잘하는 정부‘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상민은 참사 다음날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고요”라는, 역사에 남을 발언을 했다. 집권당은 이런 무식하고 무책임한 안전주무장관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에게 해임건의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해임건의안 거부를 건의했다. “장관 하나 지키지 못하느냐”는 대통령 진노에 뒤늦게 아차 했는지 몰라도(어쩌면 관저에 불려가지 못할까 우려해서인지도) 국민은 배신당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수사를 잘 하는지도 의심스럽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오늘(13일)로 45일째. 참사 당일 밤 어슬렁거리며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던 현장책임자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 대한 구속영장조차 기각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경찰 잘못을 떠먹이듯 찍어줬음에도 못 잡아낸 걸 보면, 능력부족인지 의지박약인지 제 식구 봐주기인지 경찰에 경찰 수사를 맡긴다는 것부터 우습기 그지없다. 그 수준으로 이상민 같은 윗선 수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검찰 출신이 대통령돼도 믿을 사람 하나 없는 나라인 거다.
● 선진국에선 즉각 의회 내 진상조사위 구성
아직 우리에게는 아물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이 남아있다. 무슨 특별조사 소리만 나오면 경기(驚氣)가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선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정당 간 합의에 의해 즉각 의회 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 세월호 3년 후에 펴낸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라는 논문집에서 이재열 서울대 교수가 밝힌 내용이다.

2004년 4월 미국 의회 9.11테러 진상조사위원회 회의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이 공개증언하고 있다. AP
2004년 4월 미국 의회 9.11테러 진상조사위원회 회의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이 공개증언하고 있다. AP

세월호의 경우 90일간 국정조사 말고도 국가기관 조사만 8년간 아홉 차례나 했지만 진상규명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물론 있다. 하지만 맞아 죽을 각오로 쓴다면(그리고 강원택 교수의 논문 한 대목을 굳이 인용하면) 세월호 사건의 본질은 대형 해상 재난 사고였다. 선장부터 청해진해운, 해경과 규제기관까지 각 단계마다 ‘경계’를 넘자 시스템의 여러 다른 문제와 결합해 침몰로 이어졌다고 봐야 한다. 책임은, 진실은 오직 한가지라고 규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실패로부터 배우기 위해선 조사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켜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는 ‘외재화’가 중요하다고 이재열 교수는 강조했다. 야당의 ‘비난의 정치화’를 막으면서 국힘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진상규명 보고서를 토대로 시스템을 바꾸는 정책적 처방을 이끌어낸다면 우리사회는 좀더 나아질 수 있다.
● ‘세월호 정치화’…정부실패 감추려던 靑 책임이었다

‘왜 세월호 참사는 극단적으로 정치화 되었는가’를 쓴 박종희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수세적 태도가 광우병 사태의 재현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공격적 야당, ‘외부세력’의 정치적 선동도 없지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의 ‘극단적 정치화’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참사대응 과정에서 정부 실패를 감추려 했던 청와대와 행정부에 있다는 거다.

아프게 돌이켜 보면, 사고 당일 책임 논란을 불러온 ‘대통령의 7시간’ 동안 비선실세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은 검색 절차 없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고리 3인방’과 회의를 했고 대통령의 중앙대책본부 방문을 결정한 것으로 2018년 3월 박영수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결국 당당하지 못한 이유 때문에 대통령은 진상 규명을 원치 않았고, 여당도 제도권 정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게 ‘사회적 이유와 정치 갈등’을 쓴 강원택 교수의 지적이다.

세월호를 되돌아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다시 대형 참사의 아픔을 겪지 않으려면 이번 국정조사에선 ‘당파적 정치화’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그리고 대통령실도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