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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20-04-12 13:58수정 2020-04-1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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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유세가 유독 도드라지는 총선이다. 청와대 출신 후보 윤건영이나 비례후보 최강욱은 물론, 청와대와 거리가 먼 경남지사 출신 김두관도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비례정당 열린민주당은 아예 “친문, 친조국이 자랑스럽다”를 들고 나왔다.

11일 고민정의 선거운동장에선 “고 후보가 당선되면 대통령께서 참 좋아하고 기뻐할 것”이라는 응원도 등장했다. 국회의원 선거가 국민의 대변자를 선출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 호위무사, 심지어 대통령의 기쁨조를 뽑아 올리는 행사가 된 느낌이다.


● 대통령한테 응원하는 게 국민한테 하는 것

‘대통령의 연출가’ 탁현민이 며칠 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임관식 축사를 하고 떠나기 전, 생도들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독수리 구호를 외쳐 대통령을 기쁘게 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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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도들은 대통령한테 뭔가 응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한테 (응원) 하는 것이 국민한테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하더라”며 탁현민은 “되게 기특하다”고 말했다. 생도들이 군통수권자에 대해 예의를 표시한 것을 자기 식으로 해석했을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지킴이’ 후보들은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을 공산이 크다. 옌롄커의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주인공도 그랬다. 중국 마오쩌둥의 연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 제목을 따온 작품에서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표지


● 사단장님을 위해 봉사하는 게 인민에 봉사하는 것


문화혁명 시기, 사단장 사택의 벽에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나무 팻말이 세워져 있다. 사택 취사병으로 일하는 우다왕은 “사단장님의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기쁘게 일한다.

사단장이 두 달 일정으로 베이징으로 떠난 어느 날, 사단장의 젊은 아내가 그 팻말을 식탁에 놓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이 나무 팻말이 원래 있던 자리에 없거든 내가 볼일이 있어 찾는다는 뜻이니 위층으로 올라오도록 해.”

그 다음 벌어진 서사는 굳이 옮기지 않겠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걸린 이번 총선을 희화화하거나 왜곡 선동하려는 게 아니다. 옌롄커는 유력한 노벨상 후보자이자 중국의 양심으로 주목받는 작가다. 그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마오쩌둥의 명언을 욕망의 발산기제로, 욕망의 최음제로 파악했음을 알아두자는 얘기다.

● 하나는 전체를 위해…전체주의


대통령 한 사람이 국민 전체를 대신한다는 것, 국민 전체의 뜻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서 표현된다는 식이 전체주의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는 북한 곳곳에 걸려 있다.

과거 전대협에서 ‘의장님’을 과도하게 영웅시했듯, 문파의 대통령 지키기에서 종교적 열광이 넘쳐흐른다. 대통령 편이면 국민(인민)이고, 대통령에 반대하면 토착 왜구(인민의 적)라는 인식이 인민민주주의 식이라는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새일꾼’ 전시회는 한번 보라는 말은 해주고 싶다. 박정희 독재 시절, 공화당 후보들의 선거 포스트는 ‘박 대통령 일하도록 밀어주자 OOO’으로 도배를 했다.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 독재까지도 ‘대통령 일하게 민정당에 투표하자’는 구호가 이어졌다.

지금의 집권여당이 끔찍하게 증오하는 과거 독재의 유산을 그들이, 심지어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들이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건 슬픈 아이러니다. 그래도 그때는 ‘대통령이 일하게’ 자신을 뽑아달라고 했다. 지금은 ‘대통령을 지키게’ 자신을 뽑아달라는 거다. 그럼 국민은 누가 지켜준다는 말인가.
일민미술관 ‘새일꾼’ 전시회


●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후보, 어디 없나

문 대통령의 지지율에 의지해 의원으로 당선되고 나면, 그들은 당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후속입법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처리해 대통령을 발 뻗고 주무시게 할 것이다. 북한 개별관광과 남북철도 연결사업을 강행해 문 대통령 퇴임 후에도 잊혀지지 않게 할 듯하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했을 때도 당장 북핵 포기가 이어질 분위기였다. 북-미 회담 직후 흥분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진 까닭이다. 2년이 다 되는 지금, 북한 김정은은 핵을 포기했던가. 남북관계는 개선됐는가.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는가.

15일 투표 때는 잊지 않았으면 한다.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는 대의기관이라는 사실을. 대통령을 지키다 못해 나머지 국민을 적으로 만드는 일은 ‘문파’만으로 차고 넘친다는 사실도.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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