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40년 전 사라진 아버지, 같은 길을 따라가는 아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13일 01시 40분


유년 시절 가정 버리고 떠난 아버지
친구-동료-친척 만나며 진실 파헤쳐
◇상상 속의 삶/앤드루 포터 지음·민은영 옮김/444쪽·1만9800원·문학동네

50세 나이에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주인공 스티븐 밀스. 대학 강사로 커리어는 정체됐고, 아내와 아들마저 곁을 떠났다. 삶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 스티븐은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근원적인 수수께끼를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그 수수께끼는 약 40년 전, 그가 열두 살이던 해 불명예스러운 상처를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아버지였다.

스티븐은 아버지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를 따라 이동하며 아버지의 친구와 동료, 친척들을 차례로 만난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는 50세 스티븐의 상황과 1980년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불안한 유년 시절을 오간다. 아버지는 총명하고 카리스마 있는 대학교수였지만, 종신 재직권을 받지 못하자 완전히 무너져 가족을 떠난다. 이 공백은 아들 스티븐의 삶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건 실종된 아버지의 진실을 찾는 여정이 결국 ‘그 진실을 끝내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지점에 이르기 때문이다. 스티븐의 현재와 아버지의 과거는 놀랍도록 평행선을 그리며 흘러간다. 독자는 그래서 추리한다는 쾌감보다 기억이 어떻게 한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고 왜곡하는지를 따라가게 된다. 때문에 소설은 미스터리의 외피를 쓴 심리극에 가깝다.

작가는 가정의 균열, 남성성, 실패, 관계의 거리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인상이나 기억에서 출발해 이야기를 전개하며, 설명보다 관찰과 정밀한 포착을 중시하는 문체가 특징이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간결하면서도, 이를 통해 내면의 균열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게 강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거의 장면과 그때를 함께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조금씩 겹치기에 소설은 드라마보다는 조용한 긴장감과 회고의 정서가 지배적이다. 여기에 1980년대를 휩쓸었던 후천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의 공포와 동성애 혐오 같은 시대적 배경이 아버지의 공백을 더 복합적으로 만든다.

결국 독자는 ‘우리가 부모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이 답에 대한 지나친 설명을 하려 하지 않고 절제하는 문체가 작품의 여운이 더 오래 남게 만든다.

#스티븐 밀스#아버지 실종#가족 관계#기억과 정체성#심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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