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원 가수·‘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 저자평소 말 뒤에 숨은 의미에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다. 그저 전하는 대로 곧이곧대로 믿는 쪽이 속 편하다. 먼저 넘겨짚다 보면 불필요한 오해나 착각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 특히 가사를 지을 때는 다르다. 목소리에 실려 찰나로 흘러가는 몇 안 되는 단어 속에 무언가를 깊게 담아야 하기에, 앞에서 볼 때 다르고 뒤에서 볼 때 달라지는 입체적인 표현을 만드는 쪽이 훨씬 풍성하게 느껴진다. 그 풍성함이 하나의 초점을 향해 정렬되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약간의 오해가 있더라도 작품 안에서 생기는 오해라면 외려 환영이다. 발표 당시에는 알 수 없던 의미를 노래가 입에 붙고 난 뒤에 뒤늦게 발견하는 것 또한 매력적이다. 그런 여지를 만들기 위해, 혹은 타인의 작품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즐기기 위해 나는 노랫말을 거꾸로 뒤집어 보곤 한다. 표현을 비틀거나 청자와 화자의 입장을 반전시키며 얼핏 보이지 않는 면을 들춰내는 것은 조금 별난 취향일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가장 많이 들으며 가사의 깊이를 느꼈던 노래는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밴드 ‘에로틱웜즈익스히비션’의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다. “가끔씩은 날 놀라게 해줘, 아주 가끔씩은 날 울려도 좋아”라는 도입부를 가장 좋아한다. ‘가끔씩’과 ‘아주 가끔씩’이 빚어내는 점층적인 고조와 리듬감이 훌륭하다. ‘놀라는 것’은 가끔, ‘울리는 것’은 아주 가끔이라는 의미의 층위도 멋스럽다. 이 문장을 뒤집어 읽으면, 사실은 웬만하면 놀라게 하지 말고 가능하면 거의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방어기제처럼 들리기도 한다. 동시에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숨거나 피하지 않는 용기가 읽힌다.
현실의 사랑은 필연적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 물감을 칠하다 보면 경계를 조금 벗어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서로의 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오차를 감수하지 못한다면 서로 온전히 맞닿을 수 없다. 노래는 그 오차마저 받아들이겠다는 담담한 선언이다. 무한정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고백은 언제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유독 이 문장은 그래서 더 담대해 보인다. 이 모든 사유를 단 두 문장의 도입부에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명대사와 배우의 열연이 어우러진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하다. 드럼과 베이스의 건조한 비트, 그리고 무심한 목소리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조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어지는 가사 역시 백미다. “너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을 말해줘, 내가 밤새도록 저주할 수 있게.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말해줘, 내가 영원토록 닮아갈 수 있게.” 너를 위한 분노는 하룻밤 동안의 것이지만, 네가 사랑하는 것을 닮아가는 일에는 기한이 없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만, 내가 줄 수 있는 것만 과장하지 않고 담담히 말하던 노래는 끝나기 직전 단 한 번 ‘사랑한다’고 뱉는 순간까지 망설임 없이 감정의 세례를 쏟아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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