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헌재]이상민으로 본 ‘명장’과 ‘졸장’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10일 23시 15분


이헌재 스포츠부장
이헌재 스포츠부장
1990년대는 폭언과 체벌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던 ‘야만의 시대’였다. 연세대 농구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상민, 서장훈, 문경은, 우지원 등 스타들이 즐비했던 연세대는 농구대잔치를 휩쓸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자칫 어린 선수들이 엇나갈까 봐 최희암 연세대 감독은 선수들을 더 엄격하게 대했다.

다만 이상민은 예외였다. 이상민은 최 감독의 속을 한 번도 썩이지 않았다. 그만큼 농구를 잘했고,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 그런데 4학년 때 딱 한 번 최 감독은 이상민에게 손을 댔다. 뭘 잘못해서가 아니었다. 당시 주장이던 이상민을 본보기 삼아 후배 선수들의 기강을 잡으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지시하기보다 듣는 리더

최고의 선수였던 이상민은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올해 감독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섰다. 그가 이끈 KCC는 지난달 2025∼2026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소노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정규리그 6위 팀 사상 첫 챔프전 우승이었다. 이 감독 역시 프로농구 최초로 한 팀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하는 새 역사를 썼다.

화려한 기록 잔치와 별개로 화제가 됐던 건 이 감독의 리더십이었다. KCC의 작전 타임은 다른 팀과는 완전히 달랐다. 예를 들자면 가드 허훈이 “우리 그거 하던 거 있잖아” 하고 외치면 이 감독이 “백도어(수비가 앞쪽으로 쏠린 틈을 타서 골밑으로 파고드는 공격) 하자고?”라고 되묻는 식이었다. 이 감독이 “이렇게 할까”라고 제안하면 선수들이 “아니야, 다른 작전이 나을 것 같아”라고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 감독은 자신의 선수 시절을 떠올리며 “인과응보”라면서 웃었다. 이 감독도 삼성 선수 시절 당시 안준호 감독의 작전 지시에 반대 의견을 내곤 했다.

감독 이상민은 최희암보다는 안준호의 길을 택했다. 지시하기보다는 듣고자 했다. 선수를 혼낼 일이 있어도 꾹 참았다가 따로 불러서 설득했다. 이런 이 감독을 두고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소통하는 감독’이라고 옹호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선수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 감독 역시 “결과적으로 우승했기에 망정이지 우승을 놓쳤다면 선수들에게 휘둘리는 감독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소통 리더십을 통해 그는 최 감독도 해보지 못한 프로농구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명장은 좋은 선수들이 만든다

이 감독은 KCC 지휘봉을 잡기 전에 8시즌 동안 삼성 감독직을 수행했다. 선수들을 대하는 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삼성 감독 시절 이상민은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 진출도 두 번밖에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실패한 감독이었다”고 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선수 구성이다. 이 감독은 “국가대표급 선수들로 구성된 KCC에서는 선수들이 제 기량을 맘껏 펼칠 수 있게 하는 데 주력했고, 좋은 결과가 나왔을 뿐”이라고 했다.

타 종목도 마찬가지다. 프로야구 염경엽 감독은 넥센과 SK(현 SSG) 시절 ‘염갈량’이란 별명으로 불렸지만 선수층이 두껍지 않았던 두 구단에서 우승하진 못했다. 하지만 2023년 LG 사령탑에 취임한 뒤 그해 29년 만에 팀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고, 지난해 또 한 번 정상에 섰다. 올 시즌에도 LG는 선두 싸움을 하고 있다. 차이는 역시 선수들이다. LG에선 플랜A가 생각처럼 되지 않아도 플랜B, 플랜C로 바꾸면 된다.

좋은 선수가 많다고 반드시 우승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좋은 선수 없이 우승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명장’과 ‘졸장’을 가르는 건 결국 선수들이다. 그리고 선수단을 구성하고 키우는 건 구단이다. 하위권 팀들 팬들의 분노는 감독을 향하곤 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연세대 농구부#이상민#프로농구#KCC#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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