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앞 전당포엔 초능력자들이 있다[정보라의 이 책 환상적이야]

  • 동아일보

범죄조직에 맞서 싸우는
한국형 초능력자 SF 소설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추정경 지음/296쪽·1만4000원·다산책방

정보라 소설가
정보라 소설가
책의 제목은 마케팅의 최전선에서 독자를 가장 처음 만나고 유혹하는(!) 도구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제목은 대성공이라 하겠다. 나는 아무 정보 없이 그저 제목이 멋있어서 이 책을 선택했고 흠뻑 빠져들어 단숨에 읽었다.

소설의 배경은 카지노가 유명한 어느 도시다. 중심인물들은 모두 카지노 주변부에서 먹고산다. 주인공 ‘진’은 동료 진규와 함께 성 사장이 운영하는 ‘캐딜락 전당포’에서 일한다. 도박판 주변 전당포란 도박하다 전 재산을 날리고 마지막 베팅할 돈, 하다못해 카지노 입장권을 구입할 푼돈이라도 구하러 온 ‘개털’ 도박 중독자들의 시계, 귀금속, 차, 휴대폰 등 마지막 소유물을 전당 잡아 영업을 하는 곳이다. ‘진’은 어릴 적 어머니가 집을 나갔고, 아버지와 의붓엄마 ‘정희’와 함께 산다. 정희는 카지노 호텔에서 객실 청소 일을 한다. 같은 호텔에서 보안팀장으로 일하는 인물이 배준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텔레포트는 본인이 순간이동하는 초능력이다. 생각만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초능력은 텔레키네시스 혹은 염력이다. 초능력자 SF물에서는 상당히 흔한 개념인데,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이런 능력들을 독특하게 재해석하고 조합한다. 예를 들면 ‘포트’다. 초능력자인 ‘게이트’가 공간을 열어 만드는 구멍인데, 작가는 이 ‘포트’를 무기처럼 활용한다. 초능력자가 공간을 조종하는 방식에 따라 초현실적인 액션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런데 초능력자들이 어째서 카지노 주변에서 청소 일을 하거나 전당포를 운영하며 살아갈까? 카지노는 거액의 현금이 언제나 흘러넘치는 곳이다. 게다가 은행과는 달리 그 현금이 언제나 합법적이거나 떳떳한 돈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공간에 구멍을 뚫고 얼마쯤 슬쩍해도 후환이 없을 것 같은 장소가 카지노다. 그러니까 카지노에도 전당포에도 수상쩍은 인물들이 언제나 흘러 들어오고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수상쩍은 인물 중 하나가 심 경장이다. 심 경장은 경찰이었지만 아픈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초능력을 이용해 범죄의 세계에 뛰어든다. 그러나 딸을 살리지 못한다. 초능력자들을 이용해서 불법 장기 밀매를 하는 조직에 이용당했기 때문이다. 심 경장은 복수를 위해 조직의 우두머리를 추적한다.

카지노, 초능력, 장기 밀매, 범죄 조직이 정교하게 얽히고설키는 줄거리가 더없이 매력적이다. 작가는 권선징악, 사필귀정을 향해 능란하게 이 복잡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사랑과 의리, 그리고 인간적이고 끈끈한 정으로 엮여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지키려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도 건다. 반면에 소설에서 궁극의 악인은 자기만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본래 선하지만 가진 것이라곤 내놓고 말할 수도 없는 초능력뿐인 인물들이 악인에게 조종당해 서로 싸워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래서 액션은 박진감이 넘치지만 한편으로는 처연하기도 하다.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는 고전적인 멋이 넘치는 보기 드문 한국형 초능력자 SF 누아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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