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 내변산 관음봉 아래에서 바라본 변산반도 끝자락. 멀리 보이는 곰소만 너머 육지는 고창군이다.
미당(未堂) 서정주는 고향인 전북 고창의 소요산에 올라 북쪽 곰소만(灣) 건너 부안 변산(邊山)반도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바다에 체념하여 그 모가지를 들여대고 있는 무슨 큰 생물 같은…’(동아일보 1962년 3월 14일 자). 어쩌면 그 생물은 동시대 시인 노천명의 ‘모가지가 길어 슬픈’ 사슴이 아니었을까. ‘물속 제 그림자 들여다보고/※…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먼 산을 쳐다보는…’(시 ‘사슴’ 중). 바다를 향하는 반도는 섬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무게중심은 어쨌든 뭍에 두고 있지 않겠는가. 하물며 이름마저 ‘가장자리 산’인 변산이야 더 그렇지 않을는지. 그래서 유념해야 할 터다. 변산반도 곳곳 명승은 이름과 실상이 어긋나 보이면서도 묘하게 조화롭다는 것을.
부안군 외변산 채석강 일대. 흑갈색 또는 회색 바위가 층층이 촘촘히 쌓인 책처럼, 레고드판처럼 해변에 깔려 있거나(위 사진) 절벽으로 서 있다.● 바다와 산이 바위로 호응하다
변산은 의상봉(해발 508m)이 최고봉이다. 한데 관음봉(424m)을 정상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여기저기 봉우리들 다시 말해 이 산 저 산을 한데 묶어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부안군 땅 절반가량인 변산반도는 외변산과 내변산으로 나뉜다. 하지만 외변산은 산이 아니라 강이다. 그런데 그 강은 강이 아니라 해변이다. 이름하여 채석(彩石)강과 적벽(赤壁)강이다.
서해 쪽으로 튀어나온 변산반도 맨 왼쪽 해안에 있는 두 ‘강’ 이름의 유래는 중국이다. 채석강은 당나라 시인 이백이 세상을 떠난 전설 같은 일화에 등장한 강이고, 적벽강 또한 송나라 소동파의 유명한 시 ‘적벽부’ 배경이 되는 강이다. 한 소설가는 ‘중화 사대주의가 여기까지 미치다니…’하며 혀를 찼고, 한 언론인은 ‘연안이 굽어서 마치 강어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중요한 것은 강에 현혹되지 않고 실체에 접근하는 일이다.
외변산 적벽강 절벽은 채석강과 달리 세로 방향으로 불그스름하고 누르스름하고 꽃자주빛 도는 절리가 석류알처럼, 말벌집처럼 빽빽하게 매달려 있는 듯하다.채석과 적벽 모두 바다에 깎인(해식·海蝕) 가파른 절벽(단애·斷崖)이다.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색깔과 바위, 그리고 바위에서 깎여 나온 돌이다.
채석은 여러 가지 고운 빛깔 돌이라는 뜻이다. 그 돌들은 수천만 년 동안 깎이며 무수한 층을 이뤄 서 있거나 해변에 깔려 있다. 예전에는 책거리 그림처럼 책이 빼곡히 쌓였다고 해서 ‘책바위’라 했고, LP를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레코드판을 쌓아 놓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10~20m 높이 ‘바위 병풍’이라고도 했다.
‘해에 바래고 물에 씻긴’ 절벽은 주로 흑갈색부터 황갈색까지 빛을 낸다. 절벽에서 파도와 해류에 깎인 파편이 바닷물에 시달리면 다양한 빛깔 조약돌이 된다. 이곳에서 주은 검거나 흰 돌은 그대로 바둑돌이 됐다.
적벽에 파도와 해류가 만들어 낸 움푹 팬 굴 자리.채석강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1.5km쯤 가면 적벽강이 있다. 적벽은 황토처럼 불그스름하고 누르스름하고 황금빛을 내기도 하고 꽃자주색을 뿜어내기도 한다. 채석의 단애가 층층이 쌓였다면 적벽은 껍질이 벗겨져 모습이 드러난 석류알 같은 절리(節理)들이 헤아릴 수 없다.
두 강의 깎아지른 절벽에는 파도가 파낸 깊고 넓은 동굴이 곳곳에 보인다. 누구는 예전에 이런 동혈(洞穴)에서 선비들이 소박한 술상을 차려 놓고 시를 읊었다고도 하고, 누구는 용왕에게 치성을 올렸다고도 하는데,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자연 조화를 내변산에서 다시 볼지는 몰랐다.
내변산 개암사 대웅보전. 그 뒤로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울금바위(우금암)다.내변산은 산이다. 산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과 절경을 모아서 부르는 이름이다. 그중 하나가 개암사다. 창건한 지 1400년 가까이 됐다지만 현재 법당들은 다 임진왜란 이후 지은 것이다. 이 절 대웅보전에서 수직으로 눈을 들면 저 멀리 산 위에 나란히 선 커다란 바위 2개가 보인다. 울금바위(우금암)다. 높이가 각각 30m, 40m가량인데 세 개의 굴을 품고 있다.
개암사에서 40분 정도 올라가면 처음 보는 것이 원효굴이다. 신라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굴이다. 단순히 동굴이 아니라 거대한 절벽에 두 개의 굴이 양쪽으로 파여 있다. 유심히 바라보니 절벽 어디까지는 층층이 촘촘히 쌓여 있고, 어디부터는 각진 석류알처럼 삐쭉빼쭉 튀어나온 듯 깎여 있다. 채석과 적벽의 절묘한 조화다. 산과 바다의 오묘한 호응이다. 새삼 억겁의 세월, 지구의 운동에 탄복한다.
개암사 뒤 우금산 울금바위 아래 원효굴. 절벽과 동굴이 채석강과 적벽강에서 본 광경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름 그대로, 직소폭포
내변산 직소폭포 가기 직전 나타나는 선녀탕.외변산과 달리 내변산은 이름 그대로인 풍광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직소(直沼)폭포다. 변산반도 중심부에서 관음봉을 향해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지금이야 길도 내고 데크도 깔고 계단도 둬서 그곳까지 가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과거에는 녹록지 않았을 법하다.
신록이 시나브로 영역을 넓혀 가는 즈음이라 산이 물을 내놓는지 오솔길 군데군데가 질퍽하다. 계곡을 발아래 두고 걷다 보니 물소리가 점점 우렁우렁해진다. 폭포를 원경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든 전망대에 서니 저 멀리 하얀 폭포 줄기가 거대한 암벽을 둘로 가르며 떨어진다. 그 물은 거세게 흘러와 전망대 바로 아래에서 다시 조그만 폭포를 만들어 낸다. 더 걷는다.
전망대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직소폭포.
위에 보이는 직소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흘러내리면서 만든 작은 폭포.폭포로 가려면 계곡을 내려가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선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짙은 비취색 용소(龍沼)로 30여 m 낭떠러지 위에서 물이 거침없이 수직 낙하한다. 그래서 직소인 게다. 수천만 가닥 가느다란 흰 실을 한데 묶어 낸 듯한 물줄기다.
조선시대 한 선비는 이를 보고 흑룡이 치솟는 것 같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알겠다. 흑룡은 과거 기우제를 드리는 대상의 하나로 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실제 가뭄이 들었을 때 이 용소에서 비를 바라는 제사를 드렸다.
직소폭포. 높이 30여 m 바위 사이로 용소를 향해 수직 낙하한다(위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사진). 직소폭포 주변 나무에 새싹이 움튼다.신기한 점은 폭포가 떨어지면서 굉음을 내는데 주위는 되레 적막해지는 듯하다는 것이다. 용소 주변 바위에 앉아 무심하게 보고 있자니 노이즈 캔슬링 기능 탁월한 이어폰을 낀 것 같다. 지워준 것은 소리가 아니라 번잡한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가슴이 후련해진다.
91년 전 이곳을 찾은 시조 시인 가람 이병기는 직소폭포가 ‘송도 3절’인 개성 박연폭포에 비길 만하겠다고 했다(동아일보 1935년 9월 6일 자). 박연폭포를 보지 못해 뭐라 말하지 못하겠지만, 직소폭포가 건네는 봄의 흥취에 자못 취한 것은 사실이다.
직소폭포를 지나 재백이고개로 향하는 약 1km 오솔길을 따라 흐르는 시내.내친김에 관음봉 주위를 에둘러 내소사(來蘇寺)로 내려갈까 싶다. 직소폭포에서 재백이고개 초입 재백이다리까지 1km 남짓 호젓한 길을 걷는다. 평지에 가까운 경사인 데다 왼쪽으로 직소폭포를 향해 흐르는 시내가 동행한다. 상쾌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다. 녹음이 우거지고 온갖 꽃이 더 핀다면 금상첨화일 테다.
내변산 내소사 일주문에서 가람으로 이어지는 전나무 길. 결혼 전 연인이 오면 행복해진다는 속설이 있었다.20여 년 전 결혼을 앞두고 아내는 내소사행을 고집했다. 일주문부터 이어진 전나무 길을 걸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였다. 반대로 채석강에 가면 커플이 깨질 확률이 높다고 했다. 아무 근거는 없었다. 20여 년 만에 다시 온 내소사는 전나무 길도, 오색단청 세월에 씻겨 속살 드러낸 나뭇결 따스한 대웅보전 꽃살문도 그대로였다. 그때는 눈길 주지 않은 내소사 이름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을 봤다. ‘이곳에 오면(來) 소생할(蘇) 수 있다’는 뜻이란다. ‘당나라 소정방이 찾은 절’이라는 일설보다는 훨씬 낫다.
내변산 내소사 대웅보전.
내소사 대웅보전 정면 여덟 문짝은 꽃살문이다. 위에서부터 연꽃, 모란, 국화 꽃살문. ● 서민 위한 생태탐방원
국립공원공단이 운영하는 고사포야영장 워케이션센터.채석강과 적벽강 사이 물굽이 해변 언덕에 변산반도생태탐방원이 있다. 왠지 학술적인 냄새를 풍기는 이름이지만 국립공원공단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다. 서해를 품은 조망은 ‘왜 이곳에 5성급 호텔이 들어서지 않은 것일까’ 생각하게 할 정도다. 가격도 저렴하다 할 정도로 상식적이다. 공단에서는 변산반도에 생태탐방원을 비롯해 ‘직소천자동차야영장’ ‘고사포야영장’ ‘워케이션센터’ 같은 시설을 두고 여행객을 부르고 있다. 국민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용료는 매우 합리적이다.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것들을 이용하려면 예약해야 하는데 성수기는 물론이고 비성수기에도 예약 사이트에서 ‘광클릭’을 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한다. 기왕에 혈세를 들이는 것이라면 진짜 서민들에게 기회를 먼저 주는 예약 방식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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