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새 전북 임실과 군산, 울산 등 세 곳에서 일가족 사망 사건이 잇따랐다. 지난해 기준 정부 사회보장사업은 1323개나 되지만, 어느 것도 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지원 대상을 가려내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위기 가구로 발굴되지 않았거나, 위기 징후가 포착됐지만 지속해서 개입할 수 없는 제도적 한계 때문이었다. 복잡하고 성긴 복지 안전망이 초래한 비극이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후 정부는 위기 가구를 선제적으로 찾아내는 데 주력해 왔다. 단전,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47가지 위기 징후를 분석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상담하고 도움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안내한다. 그러나 모든 위기 가구를 발굴하기엔 역부족이다. 군산에서 숨진 모자는 공과금이 두 달째 밀렸는데 모니터링 기준인 3개월에 못 미쳐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
설령 정부가 위기 가구로 발굴했더라도 대다수 복지 서비스는 본인이 신청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복지 신청주의’는 여러 곳에 사각지대를 만든다. 정보가 취약한 고령자나 고립 청년, 정신 장애인 등은 신청조차 못 하고 혜택에서 배제되기 쉽다. 서류 준비 등 복잡한 절차와 자신을 복지 대상으로 드러내야 하는 자괴감 등을 이유로 신청을 꺼리기도 한다.
신청주의의 한계를 메우기 위해 공무원이 사회보장급여를 ‘직권 신청’할 수 있도록 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제약이 많다. 자녀 넷과 함께 목숨을 끊은 울산 사건의 아버지가 그런 사례다. 공무원이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안내했지만 당사자는 응하지 않았다. 직권 신청을 하려 해도 당사자의 금융정보 제공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지난해 생계급여를 새로 받은 17만1370가구 중 직권 신청이 0.1%(198건)에 그친 이유다. 정부는 당사자의 자활 의지 부족이나 제도적 한계 탓에 생계급여를 못 받는 ‘비수급 빈곤층’이 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복지 신청주의 극복은 인식 전환에서 시작된다. 복지는 국가의 ‘시혜’가 아닌 국민의 ‘권리’라는 인식이다. 복지 제도를 일찍 정착시킨 국가들은 선제적 복지로 사회 안전망을 촘촘히 했다. 영국은 고용주로부터 근로소득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아 통합 복지수당 급여액을 즉시 재산정한다. 벨기에는 연금, 건강보험 등을 담당하는 기관 간 데이터 교환의 장벽을 없애고 수급권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사회보장 교차은행’ 시스템을 갖췄다. 국민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국가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간담회에서 “복지 신청주의는 잔인한 제도”라며 자격이 있으면 자동으로 혜택을 받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위기 가구 발굴 등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사각지대를 얼마나 줄였는지는 의문이다.
복지 신청주의 개선이 곧 사회 안전망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득이나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 능력 평가 등 까다로운 조건 탓에 지원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복지 대상을 넓히면 당장은 재정에 부담이 되겠지만, 문턱을 낮춘 ‘다가가는 복지’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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