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미끼’ 물고 뛰어든 이란 전쟁
출구 못 찾고 소모전 수렁에 빠질 가능성
‘핵 문턱’ 이란도 북한식 핵무장 질주할 것
절제 잃은 권력이 낳을 ‘위태로운 핵 질서’
이철희 논설위원
연말 연초에 나온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과 국가방위전략(NDS)에는 냉혹한 힘의 질서를 강조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그중에서도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의 ‘공격적 현실주의’ 논리가 짙게 배어 있다. 대외정책의 최우선순위를 서반구(아메리카대륙)에 두고 압도적 우위와 군사적 지배의 복원을 천명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에선 중국 러시아를 억제하기 위한 동맹의 책임분담을 강조한 것은 미어샤이머의 논지를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어샤이머에 따르면 어떤 강대국도 글로벌 패권이 되기는 어렵다. 미국도 서반구의 지역 패권일 뿐이다. 다만 미국은 서반구 패권이면서 다른 지역에서 패권의 출현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특히 다른 지역에선 2∼3개의 강대국이 경쟁하도록 하면서 미국은 ‘역외 균형자’ 역할을 하는 게 현명하다는 그의 주장은 트럼프 대외전략의 핵심을 관통한다. 그 덕분에 미어샤이머가 트럼프 1기 때부터 어떤 학자보다 각광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과연 현실주의에 기초한 합리적 전략인가. NSS 문서는 “현실적이되 현실주의자가 아닌, 원칙적이되 이상주의자가 아닌, 강력하되 매파가 아닌, 절제하되 비둘기파가 아니다”라며 이른바 ‘유연한 현실주의’를 내세운다. 하지만 학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트럼프가 이념과 규범을 내세워 위선을 떨진 않지만 손익계산에 따라 뭐든 입맛대로 해치우는 노골적 속물주의는 낡은 제국주의의 21세기판 변종일 뿐이다.
4주 차에 접어든 대이란 전쟁을 두고도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뚜렷한 목표도 출구전략도 없이 시작된 전쟁의 예정된 실패”를 예견하며 싸늘한 평가를 내놓는다. 미어샤이머는 한층 신랄하다. 이스라엘이 던진 미끼를 트럼프가 덥석 물어버린 “전략적 재앙”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올해 초 미군 전력의 중동 배치 때부터 미국이 전쟁에 끌려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그런데 트럼프는 ‘중동의 질서를 일거에 바꾸는 위대한 업적을 세울 절호의 기회’라는 감언(甘言)에 넘어갔다. 베네수엘라 참수작전의 짜릿한 성공에 도취해 있던 터라 이번에도 ‘짧은 소풍’으로 끝날 것으로, 이란 민중의 봉기로 정권교체까지 이룰 것으로 오판했다.
이제 트럼프는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스스로 금기로 삼던 ‘끝없는 전쟁’의 수렁에 빠진 형국이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엔 이기지 않으면 지는 전쟁, 이란엔 지지 않으면 이기는 전쟁이 되고 있다. 시간은 이란 편이다. 미어샤이머는 “이란이 운전석에 앉았다”고 진단한다. 트럼프는 지상군 투입이 없는 승리를 원하지만 그건 기적을 바라는 일이라며 앞으로 전쟁은 몇 달, 몇 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전쟁은 우연과 돌발이 향배를 좌우하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거기에 트럼프의 예측불가 독단까지 더해지면서 이 전쟁은 초불확실의 안개에 휩싸여 있다. 당장 이란이 미국의 막강 군사력에 맞서 얼마나 버틸지 의문이다. 한편으론 계산 빠른 트럼프의 재빠른 손절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라면 돌연 승리를 선언하고 철군한 뒤 호르무즈 해협 안전은 다른 나라들에 떠넘긴 채 자신은 천연덕스럽게 피스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전쟁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든 트럼프의 패착이 불러올 세계적 불안과 혼란은 장대하게 이어질 것이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 동맹체제에 남길 더 큰 균열과 상처는 물론이고 전 세계 반미 불량국가에 던지는 잘못된 메시지는 향후 핵 안보질서까지 흔들게 될 것이다.
사실 이번 전쟁의 근원에는 이란의 핵개발이 있다. 이란은 실제 핵무기를 만들진 않으면서 핵 기술과 인프라를 보유한 채 그 잠재적 핵 역량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는 ‘핵 문턱(nuclear threshold)’ 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런데 이 전쟁은 결국 이란이 북한식 신속한 핵무장 경로를 채택하게 만들 것이고, 그 결과 중동의 유일 핵무장국 이스라엘의 핵무기 사용까지 자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부를 수 있다고 핵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트럼프는 1기 때 북한과는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 이란과는 기존 핵합의(JCPOA)를 일방 파기했다. 김정은과의 현란한 외교 쇼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고 북한은 핵무장을 한층 가속화하면서 트럼프의 ‘핵국가(nuclear power)’ 거래 상대가 됐다. 이제 트럼프는 이란마저 핵 문턱을 넘어 핵무장으로 전력질주하게 만들 것이다. 절제력을 잃은 강대국의 변덕과 횡포가 두 번씩이나 불량국가의 핵 폭주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역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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