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는 몽상가다. 하지만 그가 진짜 무서운 건 막대한 자금을 무기로 그 꿈을 현실화한다는 점이다. 머스크의 눈은 화성을 향하고 있다. 정확히는 인류의 화성 이주가 목표다. 2024년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 유세장에 등장했을 때도 ‘OCCUPY MARS’(화성을 점령하자)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그 꿈을 위해 인공지능(AI), 로봇, 우주선까지 손에 넣은 머스크가 반도체까지 직접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머스크는 22일 미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초대형 반도체 공장인 ‘테라팹(Fab)’ 건설을 공식화했다. 일주일 전 X(옛 트위터)에서 예고한 대로다. 그는 “테라팹을 짓지 않으면 필요한 만큼의 칩을 확보할 수 없다”고 했다. 외부 위탁 생산만으로는 미래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테라팹은 테슬라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우주 데이터센터 등에 쓰일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대만 TSMC가 자신의 공장을 ‘기가팹’으로 부르곤 하는데, 기가(10억)보다 1000배 큰 숫자인 테라(1조)를 공장 이름에 붙였다.
▷마치 ‘기가팩토리’ 탄생의 데자뷔 같다. 머스크는 2013년 “전 세계 배터리 생산 능력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하나의 공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머스크 특유의 ‘허세’라는 부정적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미 네바다주에서 전기차와 배터리를 만드는 1호 기가팩토리가 문을 열었다. 테슬라가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장악한 데는 미 캘리포니아주, 중국 상하이, 독일 베를린까지 확장된 기가팩토리의 뒷받침이 절대적이었다. “답답하면 내가 만들면 그만”이라는 머스크식 투자 본능이 10여 년 만에 재등장한 셈이다.
▷다만 반도체는 머스크에게도 쉬운 도전이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극강의 실력을 쌓아온 삼성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7%에 그친다. TSMC는 파운드리 사업만 하고,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만 만든다. 반도체 미세공정은 이미 1나노(10억분의 1)대에서 경쟁하고 있어 후발주자에겐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하나씩도 어려운데 머스크는 AI 칩과 메모리 모두를 만드는 데다 설계, 제조, 패키징까지 수직 계열화하겠다는 구상이라고 한다. 아무리 머스크라도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머스크에게 지금 가장 아쉬운 건 시간이다. 그는 발사 비용을 100분의 1로 줄인 재사용 로켓을 개발해 우주 시대를 성큼 앞당겼다. 그러니 사업의 빠른 진척을 가로막는 ‘반도체 공급난’을 하루빨리 풀어내고 싶을 것이다. 테라팹의 성공과 별개로 거대한 메기의 등장에 긴장한 기존 기업들이 반도체 공급 속도를 높인다면, 이 또한 머스크가 원하는 결과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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