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한 사람을 위한 사법 변경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18일 23시 15분


큰 것은 크고, 작은 것은 작게 다뤄야
사법 변경 같은 큰일에 입다물면서
그보다 작은 일에 온건한 척하는 건
중도도 실용도 아닌 속임수

송평인 칼럼니스트
송평인 칼럼니스트
민주당 정권 내부의 검찰 보완수사권을 둘러싼 갈등은 자기들이 함께 잘못된 판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서 서로 자기가 더 옳다고 티격태격하는 것이다. 이 갈등은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이재명 대통령의 중도 흉내 내기에 이용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 수사관을 없애는 것이다. 검찰 보완수사권 인정은 검찰에 전문 수사 인력을 남겨둔다는 점에서 잘못됐다. 정반대로 검사에게 수사권까지 뺏는다면 그 또한 잘못이다. 검사는 혼자서라도 수사하겠다면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수사 인력이 없다면 수사권은 주로 지휘권을 통해 행사될 수밖에 없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은 수사반장이 형사를 지휘하듯 하는 건 아니다. 검찰이 거대한 수사 인력을 갖고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개혁 대상이 됐다. 다만 수사지휘권은 단순히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영미법계에서는 기소에 대한 책임을 경찰이 지지만 대륙법계에서는 검찰이 진다. 중요한 것은 기소의 책임자로서 수사를 주재할 수밖에 없는 검사와 실제 인력을 갖고 수사하는 수사기관의 상호 견제다. 검찰이 가졌던 막강한 수사권을 경찰이나 다른 수사기관에 넘겨주는 것은 도루묵이거나 개악이다.

지금 수사권 조정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사법 변경이다. 수사권이야 어찌 되든 기소가 되면 법원으로 넘어와 법원이 최종 판단을 한다. 수사권 조정은 민주당 정권의 주도로 최악의 개악으로 끝나 가지만 그동안의 숱한 논의 덕분에 올바른 방향은 나와 있다. 대법관 12명을 늘리고 재판소원을 도입하는 것은 심도 깊은 논의 없이 졸지에 이뤄진 것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졸지에 이뤄졌다는 사실 자체부터가 틀려먹었다. 대통령이 이런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한마디 말도 없이 통과시켜 놓고는 검찰 보완수사권에 대해 그것도 예외적이라는 수식을 달며 온건한 개혁의 추진자인 양 행세하는 건 보기 민망하다.

민주당에서 정신 나간 몇몇이 대통령 재판 중지법을 거론할 때도 상황이 비슷했다. 법원은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중지했고 더 할 생각도 없어 보였는데도 대통령은 재판 중지법을 원하지 않는다는 뉴스가 대통령실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때 이미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 도입이 민주당에서 거론되기 시작했으니 대통령실이 언급한다면 그 문제를 언급했어야 하나 딴소리를 하며 생색을 낸 것이다.

‘상고법원’을 추진하다가 사법행정권 남용의 올무에 걸린 양승태 대법원도, ‘상고법원’을 탄핵해 놓고는 염치없게 ‘상고허가제’를 대안으로 내놓은 김명수 대법원도 부장판사급 재판연구관까지 대폭 늘려야 하는 대법관 증원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돈 버는 데나 공직 줄이는 데는 등신이고 돈 쓰는 데나 공직 늘리는 데는 귀신인 민주당도 법관 증원만은 주저해왔다. 그런 민주당이 돌변해 대법관증원법과 재판소원법을 통과시켰다. 대법관 증원을 통해 사법권을 장악하는 건 동유럽과 남미의 민주주의 퇴행 국가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한 사람을 위해 그러고 있다는 점에서 더 악질적이다.

대법관 증원은 내년부터 시작돼 당장 느껴지는 게 없지만 재판소원은 이미 시작됐다. 재판소원을 제기한다고 해서 다 심리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재판소원을 심리 대상으로 삼을지 판별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째려봤다고 장관을 탄핵 소추한, 명백한 남용 사건도 몇 개월씩 끈 헌재다. 그런 헌재가 매주 수십 건 수백 건의 재판소원을 처리한다고 한다. 헌재는 감당할 인력과 시간이 없으면서도 재판소원 도입에 찬성했다. 재판소원은 도입할 수도 있겠지만 대법원 독립이 위협받는 지금은 아니다. 아무리 경쟁 관계라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미국 등 대부분 국가들이 3심 중 마지막 한 번은 사회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중요한 사건만 다룬다. 그래서 상고법원이나 상고허가제가 법원에서 대법원장의 성향을 불문하고 개혁 방향으로 제시됐던 것이다. 사실상 4심제의 도입을 반기는 곳이 헌재 말고도 더 있으니 변호사업계다.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다. 권력자와 부유층은 한 번 더 재판받는 혜택을 누리겠지만 대부분 국민은 판결 확정의 지연과 소송 비용의 증가에 시달려야 한다. 또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 도입은 법원과 헌재의 대폭 확대 없이는 불가능하고 그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왜 국민이 한 사람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감당해야 하나.

#민주당#검찰개혁#보완수사권#수사지휘권#대법관 증원#재판소원#사법개혁#상고법원#대통령 재판#법원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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