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이벤트는 6·3지방 선거입니다. 국회의원 말고 지자체장들과 도의원 시의원들을 뽑는 시간이 80여 일 남았습니다. 보통 이런 정치 이벤트를 앞두면 여야 지도부의 움직임은 언론의 중요 취재 대상이 되고 사진의 주제가 됩니다. 그래서 홍보를 담당하는 마케팅 담당자들은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수첩을 점검합니다. 과거 선거 이벤트에서 벤치마킹할 만한 장소와 포즈 등을 꺼내 현재의 지도부와 출마자들에게 제시합니다. 그런데 올해만큼 여당과 야당의 홍보 능력에서 차이가 났던 적이 있을까 싶을 만큼 현재 양극화는 심한 상태입니다. 두 당이 걸어온 역사에서 기인한 실력 차이이기도 하고 내부 단합 정도가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현장 방문은 패턴이 있습니다. 시장을 돌고, 주민과 악수하고, 상인과 눈을 맞추는 장면은 선거철이면 늘 반복됩니다. 출근길 지하철역 입구에서 인사를 하기도 하고 경로당과 대학 캠퍼스를 찾아 나이대별 유권자들 공략하기도 합니다. 좀 과감하다 싶은 후보는 목욕탕에 들러 맨 몸으로 표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포토제닉해야 시선을 끌기 때문입니다.
공식 선거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는 여당과 야당 지도부의 움직임이 특히 중요합니다. 이번 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인천시장 후보로 공천된 박찬대 의원이 인천 강화 앞바다 새우잡이 배에 함께 올랐습니다. 작업복 차림으로 배에 타고, 그물을 걷는 장면까지 공개됐습니다.
이 선택은 뜻밖입니다.
11일 오후 인천 강화군 서검도 앞바다 조업한계선 근처 괴리어장에서 정청래 민주당 대표(왼쪽)가 인천시장 후보인 박찬대 의원이 새우잡이 조업 현장 체험을 하고 있다. 인천= 장승윤 기자.
새우잡이 배는 대체로 거칠고 고된 노동의 공간으로 인식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착취나 열악한 노동환경 같은 부정적 연상도 따라붙습니다. 그런 공간에 정치인이 들어갔다는 것, 그것도 어민 복장에 가까운 작업복을 입고 조업 장면을 만들었다는 것은 꽤 과감한 판단입니다. 누가 이 장면을 기획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정청래 대표와 박찬대 의원은 이날 인천 강화군 교동도 죽산포구를 찾아 조업 현장을 체험했습니다. 배 위에서는 조업한계선 문제로 인한 어민들의 고충을 들었고, 이후 시장으로 이동해 주민과 상인들을 만났습니다. 기사만 보면 민생 현장 방문입니다. 하지만 선거 국면에서 이 일정의 핵심은 내용만이 아니라 장면에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배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강한 메시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장면은 과거 선거에서 흔하지 않았을까
품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시간도 들고, 동선도 복잡하고, 위험 부담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다에는 표가 모여 있지 않습니다. 골목과 시장, 거리와 상가 앞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악수하고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취재진도 모으기가 쉽습니다. 가성비를 고려했을 때 이번 일정은 단순한 체험 방문 이상으로 보입니다.
당대표가 직접 시간을 내어 후보와 한 배에 오르면서, 박찬대를 밀겠다는 당의 의지를 화면으로 강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함께 작업복을 입고 같은 배에 탄 장면이 훨씬 분명합니다.
이 장면이 더 눈에 띄는 이유는 두 사람의 관계 때문입니다.
정청래 대표와 박찬대 의원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사이입니다. 정치에서는 경쟁의 기억이 오래 남습니다. 그런데 이번 장면은 그 기억보다 현재의 연대를 앞세웁니다. 경쟁했던 두 사람이 아니라, 한 팀으로 움직이는 두 사람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11일 오후 인천 강화군 교동도 죽산포구에서 박찬대 의원(인천시장 후보)과 정청래 당대표가 조업을 나가기전 준비를 하고 있다. 인천= 장승윤 기자.
●같은 날, 다른 당은 다른 모습이었다
같은 날 야당의 풍경은 대조적이었습니다. 계엄 461일 만에 가까스로 ‘절윤’ 결의문을 내놨지만, 이후 무엇을 먼저 할지를 두고 다시 이견이 드러났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쪽은 혁신 선대위와 인적 쇄신에 무게를 두고 있고, 쇄신파 일부는 강성 친윤 인사 정리를 요구합니다. 거기에 친한계는 한동훈 전 대표 제명 철회가 우선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도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는 논의 자체에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군용 야전 점퍼’를 떠올리게 하는 옷을 입고 등장했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은 어제(13일) 임명 29일 만에 전격 사퇴했습니다. 한쪽은 함께 배를 타는 장면을 만들었고, 다른 한쪽은 아직 ‘어떤 배를 탈지,’ ‘누구와 탈지’ 조차 정리되지 않은 모습입니다.
“우리는 보여주기식 쇼는 안합니다”라고 말하는 정치인도 가끔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시대인지 궁금하긴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미지 경쟁이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큽니다. 인공지능(AI)기술이 처음으로 선거에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준비된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간의 컨텐츠의 차이가 크게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선거에선 공약과 조직력이 중요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누가 더 선명한 장면을 만들고 그것을 반복해서 유통시키느냐가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선거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인천 바다 로케이션 장면은 이번 선거에서 누가 유권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예고편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 ‘새우잡이 배’ 사진에서 무엇을 읽으셨나요? 여러분의 깊이 있는 시선을 댓글로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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