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은 옛사람이 남긴 흔적을 찾아 역사의 빈 페이지를 채워가는 과정이다. 기록이 다 말해주지 못하는 진실이 유물과 유적에는 남아 있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군사 활동의 흔적까지 읽을 수 있다.
수십 년간 발굴 현장을 누벼 온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 교수가 교과서를 바꿀 정도로 획기적인 발굴 사례 52개를 소개했다. 선사시대부터 삼한, 고구려·백제·신라·가야, 통일신라까지 아우른다.
발굴 과정에 얽힌 에피소드도 풍부하게 담았다. 저자는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도굴꾼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유물을 찾아내 가슴을 쓸어내렸던 경험을 소개한다. 2000년 전 통나무 목관 아래 유물이 가득 담긴 대나무 바구니가 있었던 것. 바구니 속에는 동검, 철검, 중국 한나라의 청동거울과 동전, 붓, 손칼 등이 있었다. 도굴꾼들이 목관 하부의 제사용 구덩이인 ‘요갱’의 존재를 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미숙한 발굴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백제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지만 1970년대에 봉분을 복원하다가 왕릉 건축 부재인 전돌이 봉분 무게를 견디지 못해 다수 부서졌다. 1400년 이상 보존돼 온 백제 왕릉을 20세기 한국에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린 것. 무령왕릉은 고고학계 최악의 발굴로 꼽힌다.
책 속 발굴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고대사의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유물과 유적, 발굴 현장을 찍은 컬러 사진 100여 장이 이야기를 더 실감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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