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30년 ‘마오 정신’ 띄우는 中… 불만 키울까 우상화는 경계[글로벌 현장을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3일 2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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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6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의 국기 하강식을 보기 위해 몰린 인파. 이날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둥 탄생 130주년이어서 평소보다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지난해 12월 26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의 국기 하강식을 보기 위해 몰린 인파. 이날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둥 탄생 130주년이어서 평소보다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지난해 12월 26일 오후 4시경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찾았다. 수백 명의 인파가 이날 오후 4시 55분에 시작되는 국기 하강식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당국은 톈안먼 광장에서 매일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을 진행한다. 일출과 일몰에 맞춰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행사 시간은 매일매일 분 단위로 달라진다.

평소에도 이 행사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이지만 이날은 특히 더 많았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의 탄생 130주년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톈안먼 망루에 걸린 그의 초대형 초상화를 찍기 위해 연신 휴대전화의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곳에서 만난 20대 중반 남성 예(葉)모 씨는 “취업이 어렵고 갈수록 빈부격차가 커지는 것 같아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평등’을 강조했던 마오쩌둥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자신 또한 2년 전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취업을 하지 못했다며 “결혼, 출산, 주택 구매 등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중국 우정 당국이 마오쩌둥 탄생 130주년을 맞아 발행한 기념 우표. 중국 국가우정국 홈페이지 캡처
중국 우정 당국이 마오쩌둥 탄생 130주년을 맞아 발행한 기념 우표. 중국 국가우정국 홈페이지 캡처
이날 소셜미디어 웨이보 등에는 경제수도 상하이의 한 우체국 앞에서 업무 시작 2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선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마오 탄생 130주년 기념 우표를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이 만들어진 것이다.

마오는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받지만 극단적 평등주의를 주장하며 중국 전체를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사망자가 약 200만 명이라는 것은 중국이 거의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숫자다. 그의 사후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해 개혁 개방을 진행하면서 마오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012년 말 집권한 후 중국공산당의 역할을 강조하고 미국과의 패권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마오를 숭배하는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 당국 또한 사회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마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다만 당국은 마오의 극좌 사상이 이미 경기 둔화가 심각한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경제 위기 속에서 청년들의 불만이 마오의 급진적 사상과 결합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마오 숭배 위해 ‘오체투지’
시 주석은 마오 탄생 130주년 당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마오 동지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가 항상 전진하도록 격려하는 강한 원동력”이라며 “그가 정치적 선견지명, 확고한 혁명 신념, 패기와 투쟁력, 지도력으로 인민의 추대와 공경을 받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대만해협을 담당하는 인민해방군 동부전구(戰區)는 ‘중국이 낳은 마오쩌둥’이란 전시회를 개최했다. 수천 명의 군인이 전시회를 방문해 대만 통일에 관한 일종의 사상교육을 받았다. 마오의 강한 이미지에 대만 통일이라는 목표를 결합시켜 통일을 이룰 때까지 시 주석 중심 체제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당국은 지난해 말 마오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각종 행사와 홍보물 제작을 진행했다. 중국중앙(CC)TV, 베이징 위성TV 등 관영 매체는 마오를 다룬 대형 드라마를 연일 방영했다. 마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개봉했다.

그의 고향인 후난성 사오산(韶山)에서도 대규모 기념 행사가 열렸다. 각지에서 모인 마오 추종자들이 생가 근처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일부 참가자는 절을 하고 꽃바구니를 바치며 종교 의식처럼 마오를 숭상했다. 두 무릎과 두 팔꿈치, 이마를 땅에 대고 절하는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도 목격됐다.

선전에서 왔다는 한 남성은 지역매체 후난일보 등에 “마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온 노인은 “친구 100명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젊은층, 극좌 변질될까’ 우려
다만 현재 열광적인 마오 지지자 중 상당수는 중국의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으며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난으로 빠듯한 살림살이를 잊기 위해 48년 전 숨진 지도자를 추종한다는 것이다.

마오 탄생 130주년 기념일에 그의 생가 광장에 모인 젊은이 중에서는 청년실업률 증가 등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상당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일부 청년은 아예 “혁명 무죄, 조반유리(造反有理·모든 반항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타도 자본주의” 등 문화대혁명 때 사용했던 구호를 외쳤다. 당시 홍위병들이 기성 체제를 몰아낸다며 대대적인 숙청을 벌였을 때 쓴 문구들이다.

당국 또한 지나친 ‘마오 우상화’는 경계하는 모습이다. 특히 미중 갈등이 본격화한 후 애국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생)’와 ‘링링허우(零零後·2000년대생)’가 마오에게 과도하게 감정을 이입하는 상황을 제어해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최근 마오의 대형 동상이 속속 철거되는 것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오가 젊은 시절 혁명 활동을 시작한 후난성 창사에서는 지난해 8월 마오의 동상 제작을 시작했다. 완성된 3m 규모 동상은 500여 km를 이동해 창사에 옮겨졌다. 같은 해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기념일에 맞춰 제막식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한 달 만인 지난해 11월 4일 갑자기 철거됐다.

산둥성 탄청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해 8월 이곳에서는 4m짜리 마오의 백옥 조각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제막식 전날 지방정부가 갑자기 몰수해 갔다. 대형 마오 동상이 사라지는 것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중국공산당 수뇌부의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필요 따라 ‘마오 줄타기’ 반복
전문가들은 당국의 ‘마오 줄타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필요에 따라 마오를 부각시키기도 하고 적당한 시점에는 제어하기도 한다는 의미다.

마오의 극좌 노선이 과거 시 주석의 최대 라이벌이었으나 부패로 몰락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를 연상시키는 점도 당국이 마냥 마오를 띄우기만 할 수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 보 전 서기는 충칭 수장일 때 ‘창홍타흑(唱紅打黑·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예찬하고 범죄와 부패를 척결)’ 등 마오식 극좌 정책을 펼쳐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2022년에는 마오를 추종하고 덩샤오핑을 비방한 20, 30대 젊은이 5명이 징역 9개월에서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이들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마오 홍보물을 게시하면서 구독자를 끌어모아 광고를 통해 수익을 챙겼다. 재판 과정에서도 “내가 한 일이 자랑스럽다. 마오의 사상을 홍보해 감옥에 간다면 영광”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자칭 ‘붉은 문화’를 홍보하겠다는 미명하에 범죄를 저지른 패거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마오 정신#오체투지#극좌 변질 우려#마오 줄타기#마오 탄생 13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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