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류 최초의 도서관은 세계화의 전초기지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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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독’ 경이롭다는 4세기의 기록
고대부터 일어난 분서 사건 등 인류와 호흡해온 ‘책의 수상록’
“태블릿 사라져도 책은 존재할 것”
◇갈대 속의 영원/이레네 바예호 지음·이경민 옮김/560쪽·2만6000원·반비

책은 지식과 사유를 통해 여러 문명과 세대를 이어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독일 힐데스하임의 뢰머 펠리체우스 박물관에 전시된 로마 시대의 파피루스 서적 두루마리. 게티이미지
책은 지식과 사유를 통해 여러 문명과 세대를 이어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독일 힐데스하임의 뢰머 펠리체우스 박물관에 전시된 로마 시대의 파피루스 서적 두루마리. 게티이미지
“인간이 창안한 도구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책이다. 다른 도구들은 인간의 몸이 확장된 것이지만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책의 영어 제목은 ‘파피루스’다. 우리말 제목은 스페인어 원서 제목을 옮긴 것이다. 두 제목을 비교하면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책에 관한 책’이다. 세계가 책을 만들어낸 기록이자 책이 세계를 만들어낸 기록이다.

시대순으로 서술한 역사서는 아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감사의 말을 포함해 166편의 에세이를 모은 수상록에 가깝다. 저자의 언어는 종종 주술적이거나 비의(秘儀)적이다. 비의적 작가 보르헤스에 강한 오마주를 드러내는 점부터 그렇다.

이집트의 지중해변에 있는 알렉산드리아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을 딴 도시다. 그의 친구이자 후계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지식의 보편성에 대한 최초의 꿈을 도서관으로 현실화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는 광대한 규모의 번역이 이뤄졌고 이곳은 오늘날 말하는 세계화의 전초기지였다. 기원전 3세기에는 장서 목록을 담당하는 칼리마코스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최초의 사서였다.

책을 대하는 방법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4세기 로마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가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만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느껴 이를 ‘고백록’에 기록했다. 책을 필사로만 제작하던 시절에는 부수가 많아도 비용이 절감되지 않았다. 너무 많이 만들어두지 않는 게 오히려 중요했다.

책은 때로 권력자들에게 눈엣가시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한 뒤 조로아스터교의 책을 모두 불태웠다. 저자는 하이네가 1821년 희곡에 쓴 “책을 태우는 곳에서 사람을 태우게 되리라”는 말을 상기하며 나치의 유대인 책 분서, 미국 플로리다에서 목사가 코란을 태워 전 세계에서 보복 테러를 부른 사건, 독서가 금지된 세상을 그린 소설 ‘화씨 451’ 등을 잇따라 불러낸다. 프랑코 정권 시절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고서점에서 금지된 판본들을 찾던 일도 아련한 기억으로 소환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책의 일대기는 아니다. 본문의 163개 장은 문명의 시초에서 그리스 로마 시대까지로 한정된다. 기원전 3세기 건립돼 7세기에 책들과 함께 소멸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그 중심을 이룬다. 저자는 중세 이후와 오늘날의 인터넷에까지 사유를 확장하지만 그것은 고대와의 비교나 연관성을 드러낼 때에 한한다.

흔한 풍문대로 책은 사라질까. 저자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사물이나 관습은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미래가 있다. 22세기에 수녀와 책은 있겠지만 와츠앱과 태블릿은 없을 수도 있다. 미래는 과거를 바라보며 진보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력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흰 수염이 더부룩한 노학자를 연상할 수도 있다. 여성 서지학자인 저자는 2019년 40세로, 이 책을 낸 뒤 스페인 국립에세이상과 서점조합상을 수상했고, 책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인류 최초의 도서관#책의 수상록#갈대 속의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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