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근형]수십 년 가꾼 산림 사라지는데 밤엔 못 뜨는 진화 헬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4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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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사회부 차장
유근형 사회부 차장
전국 산불 진화를 총지휘하는 남성현 산림청장은 최근 일몰만 다가오면 가슴이 옥죄어 온다. 해가 지면 산불 진화의 핵심 전력인 헬기를 투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십 년 가꿔 온 산림이 밤새 타 들어가도 공격적으로 진화에 나설 수 없는 것이다. 남 청장은 “과거보다 장비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야간에는 진화 능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마음 졸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도시에 산다면 남 청장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올해 산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21일 기준으로 올해만 벌써 산불 315건이 발생했다. 최악으로 평가받는 지난해 같은 기간(303건)보다 늘었다. 이미 축구장 면적의 1080배, 여의도 면적의 2.7배를 태웠다. 예전에는 3∼5월에 산불이 집중됐는데, 지구온난화와 겨울 가뭄의 여파로 1∼2월 산불이 늘고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산불 피해는 계속 늘고 있지만 대비 태세는 충분치 못한 형편이다.

현재 산불 진화에 투입 가능한 헬기는 산림청 48대, 지자체 73대, 소방청 33대 등 150여 대에 이른다. 하지만 야간 산불 진화에 최적화된 장비를 갖춘 헬기(수리온 KUH-1FS)는 단 5대(산림청 1대, 소방청 4대)뿐이다.

수리온을 제외한 헬기들은 야간 작전을 수행하기 힘들다. 자체 물탱크를 탑재한 수리온과는 달리 대부분의 헬기에는 물탱크가 없다. 외부에 주머니를 달고 인근 저수지에서 물을 길어 날라야 한다. 저수지 수면에 최대한 낮게 접근해 수평으로 기체를 유지하면서 물을 채우는 것은 베테랑 조종사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물을 뿌릴 때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물주머니가 전선에 걸릴 수 있고, 뿌리는 과정에서 헬기에 불똥이 튈 우려도 있다.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야간에는 어려운 일이다.

2018년 염원하던 수리온 도입이 실현됐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야간 산불 진화에 올해 단 한 차례도 투입되지 못한 것이다. 풍속 초속 5m 이하, 사전 지형 탐색을 마친 경우 등 국토교통부의 야간 헬기운항 규정이 까다로운 탓이다. 이대로라면 ‘전투가 한창인데 밤만 되면 작전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초대형 산불이 늘면서 야간 헬기 투입을 늘리고 있는 미국 호주 등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헬기 대신 경사 45도까지 오르는 산불전문진화차 확대 도입과 진화 장비를 산 깊은 곳까지 접근하게 해주는 임도 확충 등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 역시 예산 확보 등 현실적 어려움이 적지 않다.

산불 대응 능력 강화는 국방력 증강과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수리온 헬기는 발주부터 도입까지 약 3년 걸리고, 야간 대응이 가능할 정도의 숙련도를 갖추는 데 1∼2년이 더 걸린다. 지금 당장 장비 확충을 결정해도 우리 금수강산을 지키는 데 투입되려면 4∼5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이제라도 미국 호주처럼 초대형 산불이 산림 지역을 넘어 도심지까지 위협하기 전에 산불 장비 고도화 속도를 높여야 한다.


유근형 사회부 차장 noel@donga.com
#산불#피해#진화#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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