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진료 막자” VS “환자 의료권 보장”…자동차보험 약관 개정에 반발 커지는 한의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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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진료비 늘면서 과잉 진료 우려
‘자동차보험 진료비 개정안’ 발의, 진단서 반복 제출 의무화 움직임
의료계 “사고 직후 증상 없어도 시간 지나면서 통증 느낄 수 있어”
증상 있다면 3개월 안에 잡아야

왼쪽부터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김태영 교수, 경희대한방병원 침구과 이승훈 교수
왼쪽부터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김태영 교수, 경희대한방병원 침구과 이승훈 교수
경상 환자 4주 초과 치료 시 진단서 제출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는 자동차보험 개정 약관이 적용되면서 한의계 반발이 거세다.

개정안은 상해 12∼14등급인 경상 환자에 대한 보험사의 최초 지급 보증 기간을 교통사고로 상해를 입은 날로부터 4주까지로 제한했다. 진료 기간이 4주를 초과하면 치료 기간이 적힌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보험사가 진료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교통사고 환자의 한방 진료비 증가
자동차보험에서 한방 진료 비율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자동차보험 한방진료의 현황과 문제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자동차보험 청구기관 비율은 의원 17.62%, 요양병원 44.94%, 병원 71.09%인 것에 비해 한방병원과 한의원은 각각 96.83%와 82.5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상 환자에게 지급되는 자동차 사고 보험금도 증가해 2021년 처음으로 3조 원을 돌파했다. 상해 1∼11등급인 중상 환자 1조5004억 원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많이 지급됐다. 보험업계는 이런 보험금 증가 원인을 한방 진료비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보험업계는 최근 몇 년간 경상 환자의 한방 과잉 진료가 확산한 점이 보험금 증가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연도별 자동차보험 진료비를 보면 2021년 기준 총 2조3916억 원 중 한방 진료비가 1조3066억 원(54.6%)이다. 사상 처음으로 병원 진료비 1조850억 원을 넘어섰다.

치료비도 병원 치료비에 비해 높았다. 1인당 치료비 기준으로 입원 환자는 103만 원, 통원 환자는 36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방 치료비는 1인당 73만 원으로 병원 치료비 27만 원의 2.7배나 됐다. 특히나 자동차 사고 보상 경험이 많아질수록 입원율과 한방 진료 이용률이 높아지고 합의금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보험 경상 환자 과잉 진료비 분석 및 규모 추정 연구’는 자동차 사고 보상 경험과 한방 진료 이용률의 상관관계에 대해 분석했다. 사고 경험이 없는 사람의 한방 진료 이용률은 51.2%였으나 사고 경험이 3회일 때는 한방 진료 이용률이 57.3%로 올랐다. 사고 횟수가 늘어날수록 한방 진료 이용률도 비례해서 상승했다.

한방병원 과잉 진료 우려 진료비 개정안 두고 갈등
한방병원에서의 과잉 진료 우려가 커지면서 국토부와 금감원은 지난해 5개월간 교통사고 입원환자 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치료비가 급격히 늘어난 한방 병·의원도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이어 지난해 8월 자동차보험 환자의 의원급 상급 병실 이용을 제한하고 경상 환자에 대한 진단서 반복 제출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자동차보험 진료비에 관한 기준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한의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환자 진료권에 영향을 끼친다며 국토부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국토부의 입법 예고가 이뤄진 뒤 서울특별시한의사회·강원도한의사회,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차례로 규탄대회를 열어 진단서 반복 제출 의무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허영진 한의협 부회장은 “자동차보험 경상 환자 장기 치료 시 진단서를 반복해서 제출하라는 것은 전적으로 보험회사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조치”라며 “교통사고 피해자의 정당한 진료권을 빼앗는 나쁜 규제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자동차보험은 배상책임보험으로 진료비 내의 급여·비급여 치료 항목이 모두 보상된다. 특히 비급여는 국토교통부의 고시인 ‘자동차보험 수가 기준’에 따라 보험사가 전부 보상하는 구조다. 수가가 상대적으로 명확한 병원 치료와 달리 한방 치료는 그동안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유사한 목적과 유사한 효과의 진료 항목을 동시에 진행해도 삭감할 근거가 사실상 없다.

보험업계는 한방 의료기관의 이런 ‘세트 청구’를 대표적인 자동차보험 과잉 진료 사례로 꼽는다. 교통사고 환자가 방문했을 때 다수의 한방 진료 항목을 일시에 진료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침, 구, 부항, 한방 물리요법, 첩약, 약침 등을 일시에 처방하고 비용도 한번에 청구하면 보험사로서는 부담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률적 처방은 결국 보험료 증가의 원인이 되고 이는 일반 소비자 보험료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 보험업계는 1회 최대 10일 치를 처방할 수 있는 첩약 처방 일수 한도를 더 줄이고 경상 환자의 약침 처방 횟수 제한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진호 대한한방병원협회 부회장은 “국토교통부와 심평원은 자동차보험 중 한의 진료비 총액이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한의 전체를 과잉 진료인 양 매도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교통사고는 초기 치료 중요 한의 진료 선호 높아”
교통사고는 특별한 외상이 없더라도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 원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도 쉽지 않다.

이승훈 경희대한방병원 침구과 교수는 “처음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이곳저곳이 아픈 경우도 적지 않다”라며 “가벼운 접촉 사고를 당하면 대다수의 운전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점점 목과 허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진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교통사고가 나면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 목이 후방으로 휘었다가 바로 앞으로 튕겨 나가고 다시 뒤로 꺾이게 된다. 이때 경추(목뼈)의 신경과 인대, 근육이 손상을 받게 되는데 이를 ‘편타성 손상’이라고 부른다. 이들 후유증은 MRI(자기공명영상), CT(컴퓨터단층촬영) 등으로 검사를 해도 정확히 알 수 없을 때가 많고 통증과 운동 제한과 같은 자각 증상만 뚜렷하게 지속되는 특징을 가진다.

교통사고로 인한 충격은 근육과 인대 손상뿐만 아니라 미세 출혈도 발생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병리적 상황을 ‘어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특히 뒤에서 차가 부딪치는 후방 충돌 시에는 0.2초 정도의 짧은 시간에 순간적으로 목이 과도하게 움직이면서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억지스러운 목의 동작으로 인해 목뼈 주위의 인대와 근육이 손상을 입는다.

외부에서 충격을 받으면 우리 몸은 실제로 부딪친 곳뿐만 아니라 다른 부위도 긴장한다. 실제 충격이 가해진 쪽의 목·허리 등의 근육이나 인대만 손상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이나 주변의 골반·등의 근육이나 인대도 긴장할 수 있다. 이때 우리의 뇌는 모든 부위의 통증을 정확하게 정량화해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는 가장 불편한 부위의 증상부터 먼저 느낀다. 이후 불편했던 부위의 통증이 조금 줄어들면 다른 부위의 통증을 느끼게 된다.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면 손목·팔꿈치·어깨 등이 아플 수 있다. 순간적으로 체중을 버틴 무릎이나 넓적다리 관절에 통증을 호소할 수도 있다.

김태영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교통사고가 난 당일에는 부딪힌 부위의 통증만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고 당시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던 하체 근육이나 반사적인 행동으로 인한 척추 통증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교통사고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골든타임 3개월 이내에 빨리 증상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만성화돼 후유증이 생기는 걸 예방할 수 있다. 3개월이 지나면 만성 통증으로 변하고 통증이 손상 부위와 전신에서 민감해지는 감작(sensitization)이 생긴다. 이때는 통증이 쉽게 느껴지기 때문에 손상된 부위가 더 아파진다. 또 다치지 않은 부위도 통증을 더 잘 느끼게 돼 꾀병이라고 오해받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교통사고 이후 3개월 이내에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이후에는 증상 호전이 더디거나 후유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이승훈 교수는 “따라서 ‘나중에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통증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라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바로 집중 치료를 시작해 치료를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김태영 교수는 “경증 교통사고 환자의 초기 치료는 대부분 가벼운 통증으로 보호대 착용 등 가벼운 치료를 한다”라며 “하지만 초기 치료가 잘 안될 경우 만성 염좌나 관절 불안정, 인대 파열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방에서는 겉에 있는 근육과 인대만 삐끗하거나 다친 경우는 찜질이나 물리치료만으로도 호전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좀 더 안쪽에 있는 근육과 인대가 손상되면 척추뼈나 관절 주위 연부 조직까지 다룰 수 있는 침·약침 치료가 필요하다. 교통사고 손상 초기에 사용하는 한약은 미세 출혈로 인한 어혈을 제거하고 경직된 근육을 이완하는 데 탁월하다. 부드러운 수기 자극으로 근육과 인대를 풀어주는 추나 치료까지 더해지면 효과가 더욱 좋다.

자동차보험과 관련해 김태영 교수는 “경증 환자는 대개 2∼3주 이내에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하지만 자동차의 속도나 손상 부위 등 여러 가지 상황이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간혹 혈관 파열이나 인대 파열,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이승훈 교수는 “한의 진료는 근골격계 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라며 “근골격계 손상을 일으키는 교통사고 특성상 사고 환자의 다수가 한의 진료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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