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마다 볼넷-안타 불지른 마운드… 3연속 1회전 탈락 수모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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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투수들 연타 맞고 비틀… 젊은 선수들은 도망가기 바빠
호주-日-체코전 3경기 24실점
이대호 “국가대표로서 부족하다”… 이승엽 “실력 안돼 져… 더 노력을”

툭하면 비상회의 한국 야구 대표팀 이강철 감독(왼쪽)이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조별리그 B조 최종전 중국과의 경기 1회말에 선발 투수 원태인이 흔들리자 마운드에 올라 다독이고 있다. 도쿄=AP 뉴시스
툭하면 비상회의 한국 야구 대표팀 이강철 감독(왼쪽)이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조별리그 B조 최종전 중국과의 경기 1회말에 선발 투수 원태인이 흔들리자 마운드에 올라 다독이고 있다. 도쿄=AP 뉴시스
13일 일본 도쿄에는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전날에 비해 기온이 뚝 떨어졌고 바람도 강했다. 축제가 한창인데 집으로 쓸쓸하게 돌아가야 하는 한국 야구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4강 진출을 목표로 힘차게 출발했던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야구 대표팀이 WBC 세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 첫 경기였던 9일 호주전에서 7-8로 예상 밖의 일격을 당한 데 이어 10일 일본전에선 4-13으로 완패했다. 조별리그 2승을 거둔 호주가 13일 체코를 8-3으로 꺾으면서 한국은 같은 날 저녁 중국과의 마지막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 스트라이크 못 던지는 투수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무기력했던 가장 큰 이유는 부실했던 마운드다. 투수들은 호주, 일본, 체코와의 3경기에서 안타 29개를 맞았고 사사구(고의사구 1개 포함) 15개를 내주면서 24실점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한때 국제대회 ‘승리 보증수표’였던 김광현(SSG), 양현종(KIA) 등 베테랑 투수들도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본전 선발로 등판한 김광현은 2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았지만 3회부터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볼넷이 많아졌다. 양현종은 9일 호주전에 4-5로 뒤진 8회 1사 후 등판해 세 타자를 상대로 안타-2루타-홈런을 얻어맞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젊은 투수들의 부진은 더욱 뼈아팠다. 등판하는 투수마다 달아나는 피칭을 하기에 바빴다.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지지 못했다. 이번 대회 마무리로 예정됐던 고우석(LG)은 담 증세로 등판조차 못 했다. 이번 대표팀 투수진은 15명으로 꾸려졌는데 그중 7명(이의리 소형준 김윤식 구창모 양현종 정우영 고우석)은 1과 3분의 2이닝을 소화하며 7안타 7사사구 10실점을 기록했다. 선수 시절 태극마크를 8차례 달았던 이대호 SBS 해설위원은 “투수들이 던지고 싶은 곳에 공을 던지지 못한다. 국가대표로서 부족하지 않았나”라고 일침을 가했다. 일본 매체도 “(한국은) 마운드가 무너졌는데 막으러 나올 투수가 보이질 않는다”고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왔던 투수들만 다시 등판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김원중(롯데)은 6, 7일 일본 프로야구팀과의 평가전부터 WBC 초반 세 경기까지 다섯 경기 모두 등판했다. 정철원(두산)도 5경기 모두 개근했다. 10일 일본전 콜드게임 패배를 막은 박세웅(롯데)은 12일 체코전에 또 나왔다. 호주와 일본전 2경기에서 중간 계투로 던졌던 원태인(삼성)은 중국전 선발 투수로 등판해야 했다.

● ‘우물 안 개구리’는 이제 그만


한국 야구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승 우승과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이다. 이처럼 국제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으로 치솟은 인기 덕에 현재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 중엔 다년 계약에 100억 원대 몸값을 받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한국 야구의 영화는 이미 오래전 얘기다. 2013년과 2017년 WBC에서 1회전에 탈락했고,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 무엇보다 국제무대 경쟁력을 가진 선수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게 문제다. 이번 WBC에서 경기마다 안타를 날린 이정후(키움)와 홈런 2개를 친 양의지(두산) 등이 분전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선수들은 ‘국내용’임이 드러났다. 호주전에서 세리머리를 하다가 아웃된 강백호(KT)나 홈으로 파고들 기회를 놓친 박해민(LG)의 플레이도 아쉬웠다.

선수 시절 ‘국민타자’로 불렸던 이승엽 두산 감독은 “모든 야구인의 패배다. 선수들이 모든 짐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며 “실력이 안 돼 진 것이다. 앞으로 노력하고 연구해서 다시 실패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승엽의 말처럼 한국 야구는 2006년 도하 참사(아시아경기 동메달) 이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2013년 타이중 참사(WBC 1회전 탈락) 후 2015년 프리미어12에서 우승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모든 야구인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도쿄=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볼넷#안타#마운드#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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