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위 갈대가 집짓고 철새가 그리워하는 품… 그윽한 ‘생명의 땅’ 순천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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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주변 볼거리]
저마다의 생명이 태동하는 습지
시민들 노력으로 수십년간 보존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 되기도

순천만은 넓은 갯벌과 갈대밭, 논, 하천 그리고 산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다. 순천시 제공
순천만은 넓은 갯벌과 갈대밭, 논, 하천 그리고 산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다. 순천시 제공
8일 전남 순천시 대대동 순천만 갈대에 새순이 하나씩 돋아났다.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들녘에는 이름 없는 들꽃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짱뚱어, 칠게도 갯벌로 산책을 나왔다. 순천만은 넓은 갯벌과 갈대밭, 논, 하천 그리고 산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다. 습지보호지역인 순천만 33.65㎢(약 1018만 평)에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광활한 갯벌, 빽빽한 갈대밭 등 습지(28㎢)와 철새들의 휴식처인 농경지(5.65㎢)로 이뤄진 순천만은 한국에서 경관이 가장 아름답고 멸종위기 조류가 많이 찾는 곳이다.

자연해안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순천만에는 철새 250여 종과 식물 340여 종이 서식한다. 시민들은 2008년부터 올해까지 15년 동안 농장, 버려진 땅 등 156만 ㎡를 습지로 복원했다. 이처럼 많은 습지를 복원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순천 시민처럼 순천만 보전과 회복을 위해 노력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연안과 내륙으로 이어지는 순천만 습지는 미래 세대를 위한 생태교육의 장”이라고 말했다.

무진기행 풍광 간직한 순천만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한 곳인 순천만은 고흥반도와 여수반도로 둘러싸인 해수역만이다. 순천만습지로 들어가는 구름다리에 올라서면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이 보인다. 나른한 봄바람을 맞으며 갈대밭을 천천히 걷다 보면 편안함이 느껴진다. 산책 길 옆 벤치에 앉아 눈을 감으면 생명의 기운이 온몸에 전해진다.

순천만은 소설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배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소설 배경인 무진은 안개 ‘무(霧)’와 나루 ‘진(津)’을 써서 만들어진 ‘안개 나루’로 해석된다. 소설은 순천만을 “무진교를 걷다 보면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지는 갈대와 갯벌, 철새의 환상적인 만남이 이어진다”고 묘사했다.

무진은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지역이지만 문학계에서는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순천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진은 갯벌로 이루어져 있고 항구 등 시설도 변변치 않은, 특별할 게 없는 1960년대 순천의 모습이었다.

순천 시민들은 1990년대부터 도심을 통과하는 하천인 동천 하류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골재 채취 반대운동을 벌였다. 순천만 생태를 조사하고 순천만 갈대제를 개최하는 등 순천만 보호를 위해 민관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시민들은 2008년부터 올해까지 농장, 농경지 등 59만4300㎡를 갯벌(연안습지)로 복원했다. 육지로 변한 땅 96만1968㎡를 내륙습지로 바꿔놓았다. 순천 시민들이 15년 동안 복원한 습지는 155만6268㎡에 달한다.

현재 순천 도심은 1960년대 풍경이 사라지고 현대화, 도시화됐지만 몽환적 안개가 낀, 소설 속의 그 갯벌인 순천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개발의 열풍에서 비켜선 덕분에 순천만은 현대인에게 휴식을 안겨주는 최고의 힐링 명소다. 장채열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순천만이 원형 그대로 보전되면서 순천이 생태도시로 발전할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순천만 인근에는 김승옥 작가와 동화작가 정채봉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순천문학관이 있다. 순천만자연생태관도 있고 생태체험선도 운항한다. 아름다운 순천만습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용산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봄바람을 맞으며 걷기에 제격인 코스다.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본 S자형 수로, 갯벌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풍경은 말 그대로 비경이다.

철새들의 낙원 순천만
순천만은 지난해 11월 흑두루미 9841마리가 찾아 최고의 개체수를 기록했다. 흑두루미는 3월말이면 시베리아로 떠난다. 순천시 제공
순천만은 지난해 11월 흑두루미 9841마리가 찾아 최고의 개체수를 기록했다. 흑두루미는 3월말이면 시베리아로 떠난다. 순천시 제공
순천만의 3월은 북상을 준비하는 철새들로 분주하다. 순천만은 현재 흑두루미 3000여 마리, 큰기러기·쇠기러기·노란부리저어새 등 오리·기러기 2000여 마리가 여름을 나기 위해 시베리아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3월 말이 되면 철새들이 모두 이동한다.

순천만은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 동안 천연기념물 228호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흑두루미 천국이었다. 흑두루미는 세계적으로 1만6000∼1만8000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흑두루미는 다른 두루미류와 달리 개방된 습지보다 산림지역인 러시아 시베리아 남부 타이가 습지대, 우수리강, 아무르강, 중국 동북부에서 번식한다.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속 늪지에 둥지를 만들어 번식해 접근 자체가 어렵다. 흑두루미 대부분은 러시아 동북부∼중국 동부∼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3000∼4000㎞를 이동해 번식·월동한다. 한국은 흑두루미의 중요 중간 기착지다.

지난해 11월 초 세계 흑두루미 90%가 월동하는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1300마리가 폐사했다. 이즈미시 흑두루미 6000마리가 대한해협을 건너 순천만으로 유입됐다. 순천만 흑두루미 최고 개체수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11월 21일 9841마리였다.

흑두루미들이 순천만을 찾은 이유는 뭘까. 순천시는 2009년부터 순천만 난개발을 막기 위해 7.738㎢(약 234만 평)를 생태계보호지구로 설정했다. 생태계보호지구에 있는 전봇대 282개를 뽑고 환경 저해시설을 철거했다. 흑두루미 경관농업단지를 운영하는 등 흑두루미 서식 환경 개선사업을 추진했다.

안풍습지 10㏊(약 3만 평) 내 각종 시설물을 철거하고 쓰레기를 치우자 철새들이 살기 시작했다. 서식환경 개선사업으로 순천만을 찾는 흑두루미는 1999년 80마리, 2008년 350마리에서 2021년 3400여 마리로 크게 늘었다. 순천시는 강원 철원군, 충남 서산시, 전남 여수·광양시, 고흥·보성군과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장 업무협약을 맺었다. 순천지역에 흑두루미 희망농업단지 확대도 정부에 건의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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