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해 고통받는 베토벤에 빠져 일상도 온통 예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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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토벤’ 주연 카이
“내 스타일 담긴 애드리브 없이
오로지 베토벤 심정으로 노래”

뮤지컬 ‘베토벤’에서 베토벤을 연기하는 카이는 “첫 공연 막이 오르기 직전까지 역에 대해 고민했다”며 “제가 베토벤과 닮은 면이 있다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뮤지컬 ‘베토벤’에서 베토벤을 연기하는 카이는 “첫 공연 막이 오르기 직전까지 역에 대해 고민했다”며 “제가 베토벤과 닮은 면이 있다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베토벤 역을 제안받고 정말 기쁘면서도 음악사에서 베토벤이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기에 중압감이 컸어요.”

올 상반기 뮤지컬 중 기대작으로 꼽힌 창작 뮤지컬 ‘베토벤’에서 베토벤 역을 맡은 배우 카이(본명 정기열·42)가 말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2일부터 초연되고 있는 ‘베토벤’은 뮤지컬 ‘엘리자벳’ 등에서 합을 맞춘 작사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러베이가 7년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굴곡진 삶을 산 상처받은 음악가 베토벤이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를 만난 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교향곡 5번(운명)’,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 등 베토벤의 주요 곡 멜로디 일부를 넘버에 녹여 재탄생시켰다.

서울 강남구 EMK 사옥에서 27일 만난 카이는 이번 작품이 그의 17번째 뮤지컬 출연작이라고 했다. 박효신, 박은태와 함께 베토벤을 연기하는 그는 “작품에서 베토벤은 예민하고 고통받는 영혼으로 표현된다”며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니 실제 생활에서도 많이 예민해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날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가장 알맞은 단어를 고르느라 신중을 기했다. 배역에 대한 고민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카이는 작품 넘버를 소화할 때 악보에 적힌 음정과 박자를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노래할 때 완벽한 음악을 그저 바라보는 베토벤의 심정으로 불러요. 배우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박자 등을 일부 변형하는 애드리브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엔 전혀 시도하지 않았어요.”

그는 “연출가 길 메흐메르트가 ‘러베이와 쿤체가 원하던 음악’이라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카이와 베토벤의 인연은 1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는 베토벤 역에 함께 발탁된 배우들 중 유일한 성악 전공자다. 서울예고 음악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성악과에서 학사와 석·박사까지 마쳤다.

“베토벤 가곡은 평이 갈리는 편이에요. 학창시절 친구들이 베르디와 슈베르트를 노래할 때 저는 베토벤 가곡을 사랑했습니다. 고전적인 구성에서 느껴지는 여백은 사람을 사색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그는 성악 전공자로서 팝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귀족과 대중 모두의 취향에 맞추면서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까지 지켜야 했던 베토벤에게 묘하게 애정이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성악을 전공한 제가 크로스오버 음악을 택한 것 역시 돌이켜보면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은 것이면서도 한편으론 세상과의 타협이기도 했거든요.”

‘베토벤’이 개막한 후 관객들 사이에선 서사가 매끄럽지 않고 귀에 꽂히는 넘버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극 초반 ‘사랑은 욕망일 뿐’이라던 베토벤이 돌연 사랑에 빠지는 장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이 그랬듯 위대한 시작은 늘 이질감에서 온다”며 “초연을 거치며 작품이 꾸준히 발전할 거라 믿는다. 베토벤이 그랬듯 더 나은 연기와 노래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3월 26일까지. 8만∼17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뮤지컬#베토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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