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칼럼]민주주의는 정권욕의 부산물이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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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민주주의는 버림받은 지 오래
지도자 과오 불인정, 실정 은폐는 역사가 심판
최선 다하면서도 자성하는 지도자가 아쉽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오래전 일이다.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아내가 아침 신문을 읽다가 내던지면서 “이런 꼴들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라가 어떻게 되었겠는가.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라고 했다. 구한말이었다. 우리 임금이 덕수궁에 머물면서 언제 수라상에 독극물이 숨겨 들었을지 몰라 며칠 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가까이 있는 러시아 영사관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2주 동안 식사를 날라다 먹었다는 기사였다. 국론의 분열로 국정의 동질성(Identity)은 상실되고, 임금은 국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최근 정권이 바뀐 후부터 비슷한 우려를 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주간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담을 본 사람들의 심정이다.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였다. 그 내면의 의도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문 정부 5년간 민주정치가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민주당 사람뿐이다. 운동권 민주주의는 버림받은 지 오래다. 법적 제재를 앞둔 이재명과 반(反)민주적 여론에 몰려 있는 두 사람을 위해 방탄투쟁을 계속해 달라는 암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가득한 때였다. 두 사람의 선배였던 문희상 전 국회의장까지도 한 나라에 분열된 두 진영의 싸움이 국운을 위험케 하고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문재인과 야당은 이미 실패한 정당이다. 아직도 우리가 옳다고 주장하는 지도자는 민주주의를 언급할 자격이 없다. 최고지도자의 무지는 죄악이다. 국민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실정(失政)을 은폐한다면 역사가 심판한다. 두 지도자의 잘못은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치 않는 데 있다. 나라 일이야 어떻게 되든지 우리는 지도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면 더 큰 과오를 범한다. 그것이 인간 사회에 주어진 역사의 교훈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나는 대학에서 생애를 보냈다. 대학에서 더 많은 것을 받아 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교수는 정년이 되면 대학에서 버림을 받는다. 자신의 인생도 끝난다. 대학을 위해 무슨 봉사를 할까 노력한 교수는 정년이 되면 대학과 더불어 명예를 차지한다. 대학에서의 기여를 넘어 항상 국가와 민족을 먼저 걱정해 온 교수는 정년 후에도 나라를 위해 일하게 된다. 정치인도 그렇다. 관권이나 이권을 탐내는 사람은 버림받고, 주어진 공직과 사명에 충실했던 정치인은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정당과 함께 국가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는 역사를 건설하는 업적을 남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 같은 서울시장이라도 그 지위와 직책을 이용해 더 높은 지도자가 되겠다고 수단 방법을 앞세우는 사람은 시민의 존경을 저버린다. 맡은 직책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의 상식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겸손해지며 스스로의 품격을 높이게 된다.

또 하나의 현상이다. 왜 이명박 전 대통령(MB)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에 공감하고 동의하는 국민들이 있는가. MB는 경제적 부정 때문에 법적 제재를 받았다. 그에 비하면 문 전 대통령의 실책 때문에 국가와 국민 경제가 받은 피해와 손실은 비교할 수 없이 막중하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은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칭찬과 감사를 기대하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실정은 최모 여인과 그 가정 안에서 벌어졌다. 통치자가 재벌 총수를 찾아가 재정적 협조를 요청했던 사실도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하면 이재명 야당 대표와 관련된 경제적 무질서와 혼란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본인은 법적으로 결백하며 잘못이 없다고 항변한다.

국민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같은 사태에 대한 법적 해석과 질서 파괴에 대한 차별이다. 불법은 작더라도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질서 파괴는 처벌의 대상이 안 된다. 정치적 탈출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조인들은 같은 일을 처리할 때도 법적 제재를 회피할 방법을 택한다. 정치적 질서는 법적 판단보다 우위에 있으며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의 공동체의식과 애국심에 따르는 평가와 정신적 규범이 필요한 것이다. 지도자의 범악(犯惡)은 국민들의 범죄보다 더 막중하다.

앞으로는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도 스스로 반성을 아끼지 않는 지도자가 아쉽다. 국민들의 수준 높은 애국심이 국가와 민족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민주주의#정권욕#부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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