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어떤 세상인데”…조선 여성들의 인식 살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1일 12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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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글문학 ‘내방가사’

약 40년동안 내방가사를 직접 수집하고, 연구해온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본인 제공
약 40년동안 내방가사를 직접 수집하고, 연구해온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본인 제공

“여성의 공간이 ‘안방’에서 ‘세상 밖’으로 확대되면서 자의식의 성장과 함께 순응하지 않고 점차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여성의 인식도 엿볼 수 있습니다.”

‘내방가사’는 4음보 율격이란 틀 외에는 자유롭게 형식이 돋보이는 조선시대 한글 문학이다. 1980년대부터 약 40년간 내방가사를 연구해온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66)는 11일 “내방가사를 보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북 안동에서 해마다 열리는 ‘내방가사경창대회’의 심사위원장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최근 문화재청의 ‘미래 무형문화유산 발굴·육성’ 사업 공모에 선정돼 내방가사의 무형유산적 가치를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내방가사 ‘상벽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 류사춘의 정부인 연안 이씨가 아들의 과거 급제를 축하하며 썼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우리나라 최초의 내방가사 ‘상벽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 류사춘의 정부인 연안 이씨가 아들의 과거 급제를 축하하며 썼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내방가사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억압돼 밖으로 표출하기 어려웠다고 여겨졌던 16~17세기 동아시아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점들이 주목받으며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보수 유교 문화가 짙은 조선 사회. 특히 그 중심지로 알려진 안동에서 내방가사는 어떻게 향유되기 시작했을까.
이 교수는 “조선 초기 남자가 여자 집에 장가를 가던 혼인의 형태가 지금처럼 바뀌면서 시집가는 딸에게 덕목, 행동거지를 가르치고자 조선후기 학자 송시열이 쓴 ‘우암선생계녀서’(尤庵戒女書)와 같은 교양서가 나왔다”면서 “교육을 중시한 안동 지역에선 이를 4.4조의 가사형식으로 변형한 가사(계녀가)를 창작한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선 후기 한글 문학인 내방가사 ‘금강산유람가’. 이정옥 교수 제공

이후에 내방가사의 내용은 신세 한탄이나 풍류·기행 등으로 확대된다.
이 교수는 “화전가나 유람가를 보면 ‘이런 놀음 남자들만 하느냐’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와 같이 강해진 자의식이 드러난다”면서 “퇴계 이황의 행적과 덕을 추모한 ‘도산별곡’이나 조선 역사를 다뤄 교과서처럼 읽힌 ‘한양가’ 등 남성이 쓴 가사도 여성들이 모여 낭송하거나 필사하는 형태로 향유했다”고 설명했다.

내방가사는 조선 후기 지배층 수탈로 곤궁한 서민의 삶 등 사회상도 드러낸다.
이 교수는 사고로 남편을 잃고 3번이나 재가하지만 경제적으로 몰락해 유랑하는 여성의 탄식을 담은 ‘덴동어미화전가’와 관련 “과부재가금지법이 있던 조선 사회가 후기로 가면서 과부의 재가가 자유로워졌고, 당시 가혹한 징세와 수탈로 인한 궁핍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2015년 남편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전 국립국어원장)와 함께 평생 수집한 내방가사 292점을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했고, 박물관은 이를 가지고 올 상반기 ‘이내말씀 들어보소. 내방가사’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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