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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사진과 총[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72〉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12-07 03:00업데이트 2022-12-07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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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그들을 침해하는 것이다.” 수전 손택의 말이다. “그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그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자기들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됨으로써” 침해한다는 거다. 모든 사진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사냥하듯 어떤 대상을 카메라에 담을 때 발생하는 비윤리성을 지적한 말이다.

미국 사진작가 이사 레슈코는 손택이 말한 사진의 비윤리성에 주목한다. 서양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사냥꾼들이 자신들의 포획물을 사진으로 남기는 걸 즐겼다. 지금도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을 때 그의 아들들이 짐바브웨에서 사냥으로 죽인 표범, 악어, 들소 옆에서 찍은 사진들이 공개됐다. 심지어 코끼리의 꼬리까지 잘라 들고 있었다. 재미로 쏘아 죽인 것도 모자랐는지 죽은 동물을 들고 웃으면서 사진을 찍다니. 너무 가학적이었다. 총으로 죽이고 사진을 찍어 다시 한번 죽인 셈이었다. 영어로 ‘총을 쏘다’와 ‘사진을 찍다’는 똑같이 슛(shoot)이다.

레슈코는 슛이 사진을 찍는 행위를 의미할 때 거기에 밴 섬뜩함에 주목한다. 그 자신도 동물들이 늙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전에는 사진 찍는 것을 슛이라고 했다. 거기에 밴 폭력성을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버림받고 학대받고 방치된 늙은 동물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면서 슛이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인간중심적인 말인지를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 말을 쓰지 않게 됐다.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진을 찍으면서 총을 쏠 때처럼 슛이라는 말을 사용할 것이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가 인간의 폭력에 속수무책인 벌거벗은 생명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다는 거다.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타자 중에서도 더 타자”인 동물들의 마지막 모습을 조심스레 담은 그의 사진들도 감동적이지만, 무심코 하는 말로도 동물들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더 감동적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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