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판 리먼사태? 엔론사태! 핫이슈 ‘FTX 파산’ 따라잡기[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6일 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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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든 악당, 샘 뱅크먼 프리드 FTX 창업자(전 CEO). FTX 영상 캡처
세계 3위 가상자산 거래소 FTX가 파산했다는 소식, 다들 들으셨죠? 지난주 수요일 처음 ‘바이낸스 FTX 인수 추진’ 뉴스를 보고 ‘이건 딥다이브에서 꼭 써야해!’라고 생각했는데요. 불과 며칠 만에 FTX는 파산신청을 해버리고, 시장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뚜껑을 열어보니 어떻게 이따위로 거래소를 운영했나 싶을 정도로 FTX 운영은 부도덕한 사기 수준! 여러모로 가상자산 업계에 있어서 최악의 사건인데요. FTX, 그리고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의 몰락을 딥하게 들여다보겠습니다.

‘예치만 하면 8% 이자’라더니
“FTX 거래소에 달러를 예치만 하면 1만 달러까진 연 8%, 1만~10만 달러엔 연 5% 이자를 준대.” 지난달 지인이 전해준 ‘재테크 꿀팁’이었습니다. 이미 코인 좀 아는 사람들은 일종의 달러예금처럼 FTX 예치금을 활용한다더군요. 솔깃했죠. 그리고 지인이 덧붙인 한마디. ‘FTX가 망하면 코인판도 망하는 거야.’

그런데 그 일이 터져버렸습니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3위라는 FTX가 11일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신청을 한 겁니다. 파산신청서에 따르면 부채규모는 최대 500억 달러(66조원). 시장은 일단 ‘아니, 어떻게 그 잘 나가던 FTX가 파산을!’이라며 놀랐고요. 알고 보니 FTX가 고객 돈에 손을 댔고, 그 결과 10억~20억 달러(약 1조3000억~2조6000억원) 정도가 비어있다는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가상자산계를 구원할 영웅’처럼 굴었던 FTX와 그 창업자가 알고 보니 간 큰 사기꾼이나 다름 없었던 거죠. 우선 돌이켜 보면 어처구니 없는 FTX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의 그간의 행적부터 한번 보시죠.

FTX의 가상자산 거래앱. 낮은 거래 수수료와 높은 예치금 이자율로 한국 투자자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FTX 홈페이지
1인 중앙은행? 차기 워런 버핏?
240억 달러(약 32조원). 2019년 FTX를 창업한 1992년생 샘 뱅크먼 프리드가 올해 상반기 기록했던(지금은 사라져버린) 재산 수준입니다. 좋은 집안(부모 모두 스탠퍼드 법대 교수)에 MIT 졸업장을 가진(수재 인증) 이 젊은 사업가는 업계의 엄청난 스타였는데요. 뽀글한 곱슬머리에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다소 어리숙해 보이는 외모가 친근감을 더했죠. 남다른 스펙의 뱅크먼 프리드는 소프트뱅크, 타이거글로벌, 블랙록 같은 기관투자자의 투자를 끌어모으며 FTX를 키웠습니다.

동시에 화려한 마케팅으로 입을 떡 벌어지게 했는데요.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미국 프로농구(NBA) 마이애미 히트 홈구장 이름을 ‘FTX 아레나’로 붙였고요(1억3500만 달러짜리 명명권 구입). 미식축구 NFL 결승전 슈퍼볼 광고까지 사들였습니다(30초에 700만 달러). 패션모델 지젤 번천과 보그 화보도 찍었고요.

그의 명성을 더 높인 계기는 지난 5월 일어난 루나 사태였습니다. 루나 사태로 고꾸라지던 가상자산 업체들에 동아줄을 던져주며 ‘업계의 구원자’ 노릇을 한 겁니다. 블록파이에 4억 달러, 보이저 디지털에 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해줬죠. 이런 행보로 뱅크먼 프리드는 ‘1인 중앙은행’, ‘크립토계의 피어폰트 모건(JP모건 설립자)’이란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포춘지는 8-9월호에 ‘차기 워런 버핏(The Next Warren Buffett)?’이라며 그를 표지모델로 내세우기까지.

샘 뱅크먼 프리드를 표지모델로 한 8-9월 포춘지 표지.
샘 뱅크먼 프리드를 표지모델로 한 8-9월 포춘지 표지.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가 업계를 구원하려고 지원했던 게 아니라, FTX가 가라앉게 생겼으니까 무리하게 덩치를 키워서 겉보기에 멀쩡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던 거였습니다. ‘업계 백기사’라던 뱅크먼 프리드의 추락은 11월 2일 나온 기사 한 꼭지에서 시작됩니다.
FTX와 알라메다, 그 수상한 연결고리
가상자산 투자회사 ‘알라메다 리서치’는 FTX의 핵심 관계사입니다. 그런데 코인데스크가 알라메다의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니 자산(146억 달러) 대부분이 FTX 거래소가 발행한 자체 코인(FTT)으로 채워져 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또 이 FTT코인을 담보로 알라메다가 대출을 받아 여기저기 투자하고 있고요. 이를 두고 코인데스크는 이렇게 지적했죠. “FTX와 알라메다의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가깝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시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는데요. 당시엔 아직 정확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되진 않았지만, 어찌 됐든 ‘FTT 코인 가격이 무너지면 알라메다도 무너지고 FTX도 줄줄이 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집니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가상자산 거래소 세계 1위(점유율 50% 넘음)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CEO가 한마디를 보탰죠. “바이낸스 장부에 남아있던 모든 FTT를 팔겠다.”(7일). 그 파장은 일파만파. FTT코인 가격이 급락하는 동시에, FTX거래소에서 자산을 빼는 ‘코인 런’이 벌어진 건데요.

FTX의 뱅크먼 프리드는 “FTX는 괜찮다. 자금도 문제 없다”며 달래기에 나섭니다(나중에 보니 완전 거짓말). 동시에 자오창펑에게 FTX를 인수해달라고 SOS를 쳐서 인수의향서(LOI)까지 맺기도. 하지만 하루 만에 자오창펑이 “FTX 상황은 우리가 도울 능력 범위를 넘어섰다”고 철회하며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사실 이때만 해도 FTX사태는 ‘코인판 리먼사태(위험관리 실패로 인한 위기)’인 줄로 알았습니다. 동시에 ‘이거 바이낸스의 FTX 죽이기 아니야?’라는 얘기가 많았고요.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라 뉴욕타임스나 블룸버그 같은 미국 주류 언론까지 이런 시각으로 본 건데요.

바이낸스는 압도적 1위 거래소이긴 하지만, 딱히 미국에 기반이 없다는 약점이 있죠(본사가 없는 ‘무국적’ 거래소). 그래서 미국 의회가 추진하는 가상자산 규제 법안(특징=미국 바깥의 거래소에 크게 타격)을 두고 자오창펑(규제안 반대)과 샘 뱅크먼 프리드(규제안 찬성)는 입장이 완전히 엇갈렸습니다. 미국 정치권 인맥이 탄탄한 뱅크먼 프리드(바이든 대선 자금 기부자 중 2위)는 중국계(정확히는 중국계 캐나다인)인 자오창펑을 향해 ‘워싱턴에 갈 수 있나?’고 조롱해서 자오창펑을 열받게 하기도 했죠. 이런 스토리를 엮어서 마치 중국계 거래소 바이낸스가 미국계 FTX를 무너뜨렸다는 식의 해설이 나온 겁니다.

결국 11일 FTX는 파산을 신청했고 뱅크먼 프리드는 CEO자리에서 물러났는데요.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고객 돈을 빼돌린 겁니다!



마이애미 히트의 홈구장 FTX 아레나. 마이애미는 이번 사태로 새로운 명명권 파트너를 찾겠다고 밝혔다. 마이애미=AP뉴시스
마이애미 히트의 홈구장 FTX 아레나. 마이애미는 이번 사태로 새로운 명명권 파트너를 찾겠다고 밝혔다. 마이애미=AP뉴시스
21년 전 엔론사태의 재연
우리는 은행에 돈을 맡길 때 은행이 그 돈을 다른 누군가에게 대출해 줄 거라는 걸 압니다. 대신 예금주는 예금 이자를 받죠. 만약 모든 예금주가 ‘내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뱅크런이 일어난다면? 은행은 이미 나간 대출을 다 회수하지 않는 한, 돈을 돌려줄 방법이 없습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어떤가요? 거래소는 은행과 다르죠. 국내 주식시장에 비유하자면 가상자산 거래소는 ‘한국거래소+증권사+예탁결제원’의 기능을 합친 것과 같은 일을 합니다. 거래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거래해서 맡겨둔 코인을 거래소가 잘 보관해둘 거라고 믿습니다(예탁원처럼). 그러니까 거래 수수료를 내는 거죠. 만약 고객들이 내 코인과 현금을 돌려내라고 한다면? 거래소가 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FTX는 그 기본을 무시했습니다. 고객 계좌에 있던 FTT 코인 100억 달러 어치를 계열사인 알라메다에 고객 동의 없이 무단으로 대출해준 겁니다. 100억 달러는 FTX 고객 자산(160억 달러)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죠. 사실 알라메다는 ‘루나 사태’의 여파로 코인 벤처 투자에 실패하면서 지난 6월 대출 상환 요구에 시달렸다는데요. 알라메다의 빚을 갚기 위해 FTX가 고객 계좌에서 자산을 빼서 메워줬다는 거죠. 완전히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꼴. 게다가 그 중 10억~20억 달러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FTX사태는 리먼이 아닌 엔론 사건의 재연이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의 해설이 이 사건의 본질을 정리해주는데요. 위험 관리를 못해 벌어진 위기(리먼 파산, 범죄까진 아님)가 아니라, 경영진이 짜고 저지른 범죄(엔론 파산)라는 겁니다.

다만 FTX사태가 가상자산 시장에 일으킬 파장은 리먼 사태 못지 않습니다. 당장 큰일 난 건 FTX 고객들인데요. 과연 언제나 돈을 일부라도 돌려 받을 수 있을지가 요원합니다. 참고로 2014년 당시 세계 1위였던 마운트곡스 거래소가 해킹으로 파산했는데, 고객들이 아직도 배상을 못 받고 있거든요. FTX의 한국인 고객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방법이 없는데요. 확실한 건 FTX 접속자 수 기준 일본 다음으로 많은 게 한국(6%)이라고 합니다. 최소 1만명은 될 거란 관측도.

샘 뱅크먼 프리드가 10일 남긴 ‘죄송하다’는 내용의 트윗.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두고 각종 설이 난무한다.
‘크립토 윈터’ 언제까지?
FTX 파산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 전반에 미칠 충격파는 상당할 겁니다. 이와 관련해 가상자산 전문가 두분에게 각각 전화로 물어봤습니다. 유튜브 알고란TV의 고란 대표와 신한투자증권의 이세일 블록체인부 부장입니다.

-FTX 사태를 보고 국내 투자자들도 불안하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고객 자산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을까.

(고란) “원화 입출금이 가능한 5개 국내거래소는 정기적으로 실사를 받는다. 고객이 예치한 코인과 실제 거래소가 보유한 코인이 같은지 실사를 거쳐 분기마다 보고서를 낸다. 과거에 고객 돈을 빼서 쓰던 작은 거래소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이미 파산했다. FTX 같은 큰 업체가 그랬다는 게 놀라운 이유다.”

(이세일) “해외 거래소에 비해 국내 거래소가 예치금 관리를 더 빡빡하게 해와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긴 하다. 국내 감독당국이 해외보다 보수적이었던 게 역설적으로 도움이 된 측면이 있다. FTX 같은 해외 거래소는 산하에 관계사가 많아서 필요할 때 돈을 빌려주면서 수익 창출을 하기도 한다. 이와 달리 국내엔 그런 생태계가 없고 수수료 비즈니스만 해왔다. 다만 국내 거래소들이 100% 지갑을 공개하는 건 아니라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FTX 사태의 파장 어디까지 갈까. ‘구조적 문제는 아니다’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반대로 가상자산 시장에 아주 긴 혹한기가 올 거란 신중론도 많다.

(고란) “(FTX와 알라메다가) 투자했던 토큰이 워낙 많기 때문에, 청산하는 과정에서 내다 팔면서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심리가 중요한데, 신규 투자금은 안 들어오고 (코인을) 들고 있는 사람은 팔고 나가고 있다. FTX에 기관이 많이 투자해왔는데, 기관들이 손을 떼고 있다. 그동안 ‘연준의 금리인상이 멈추면 자산시장 상승과 함께 크립토도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이번 사태로 ‘크립토 윈터’가 더 길어질 거라고 본다. 2014년 마운트곡스 해킹 사건 땐 (크립토 윈터가) 3년 이어졌다.”

(이세일) “FTX는 단순한 거래소가 아니라 ‘가상자산 시장의 거대한 기둥’ 중 하나였다. FTX와 관련된 프로젝트가 상당히 많다. 단기적으로는 FTX 파산의 영향이 수면 위로 안 드러나더라도 나중에 그 영향이 나타날 거다. 실제 몇 달 전 일어난 루나 사태가 FTX 파산으로 연결되지 않았나. FTX 파산 여파는 루나 사태보다도 훨씬 클 수 있다. 추가 연쇄 파산 가능성은 당연히 있다.

-가상자산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규제는 어떤 식으로 강화될까.
(고란)“과거 미국에서 엔론의 회계부정 사건이 터진 뒤 ‘사베인-옥슬리법’이라고 부르는 회계감사를 대폭 강화한 법이 생겼다. 이처럼 미국에서도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한 법이 생겨날 거고, 그 도입도 빨라질 거다. 참고로 바이낸스의 자오창펑을 시작으로 해외 거래소들이 ‘준비금 증명’ 캠페인을 벌이며 자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자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몇몇 거래소(후오비, 크립토닷컴)는 숫자를 증명한 뒤 돈이 빠져나갔다는 의심도 받는다.”

(이세일) “FTX 사태 이전에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요구는 많았다. 선진국에서 진행 중인 법안을 보면 고객 예치금이나 스테이블 코인 규제가 포함돼 있다. 다만 법 제정이 늦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가속화될 거다. 개인적으로는 전통적인 금융회사가 가상자산 시장에 참여할 기회를 열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By.딥다이브

가상자산 거래소 FTX 파산 사태를 정리해봤는데요. 코인 투자를 안 하는 분들에겐 생소할 수 있겠는데요. 파장이 작지 않은 사건이라 알아두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주요 내용을 정리하자면

  • 가상자산계의 ‘구원자’로 여겨졌던 FTX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 화려한 스펙으로 기관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업계의 슈퍼스타였는데요.
  • ‘관계사인 알라메다의 대차대조표가 이상하다’는 기사 하나가 일으킨 파장. 업계 1위 바이낸스가 인수를 하네 마네 하더니 결국 파산신청에 이르렀습니다.
  • 그런데 안을 들여다 보니 이게 웬일. 고객 돈을 빼돌려서 관계사 빚 갚는데 써버렸다는데요. 그래서 나오는 말. ‘코인판의 엔론사태’.
  • 그 영향이 어디까지 갈까요? “크립토 윈터가 생각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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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기자 haru@donga.com
#딥다이브#ftx#가상자산#암호화폐#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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