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의선 긴급 방미… ‘현대차 보조금 제외’ 해법 논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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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인사 만나 인플레법 개선 모색
美 생산공장 연내 조기착공도 추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효로 미국 수출에 비상등이 켜진 현대자동차그룹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사진)은 23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정 회장은 본보 기자와 만나 “(IRA 관련 사안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일을 볼 예정”이라고 짧게 말한 뒤 굳은 표정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정 회장은 미국 뉴욕 등지에서 약 일주일간 머무를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행선지와 방문처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자동차업계 고위 관계자는 “미국 정관계 인사를 포함해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미국 사업을 점검하고 IRA 관련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 회장과 함께 국내외 대관 업무를 총괄하는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도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 내 생산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IRA가 발효된 가운데 현대차는 미국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는 물론이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까지 모두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현대차는 IRA와 관련해 불합리한 부분의 개선을 호소하는 한편 미국 내 생산공장 착공을 연내로 앞당기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2023년부터 전기차용 배터리 원료 생산지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로 제한한 IRA 규정에 글로벌 기업들의 대응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2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일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는 니켈, 코발트 등 2차전지 원료를 캐나다에서 조달하기 위한 협약을 맺는다.

정부-車업계 “보조금 제외 말라” 美에 요구… 美는 기존 방침 고수



현대차, 美전기차 시장 2위 선전 상황…대당 7500달러 혜택 제외돼 비상
전기차 전용 조지아 공장 착공시기…내년 상반기서 올 10월로 앞당겨
글로벌 車 업체도 대응 빨라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3일 긴급히 미국 출장에 나선 건 16일(현지 시간)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미국 친환경차 판매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IRA 도입으로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 등 전기차 5종은 물론이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5종까지 미국서 판매되는 친환경차 모두 대당 7500달러(약 1005만 원) 규모 세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소비자 및 전문가들의 우호적 평가 속에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까지 오르는 등 선전하는 상황이었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50억 달러의 추가 투자를 약속하는 등 약 10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IRA 영향으로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등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한국 정부와 협력해 IRA에 대응하는 한편 북미 생산 설비 가동 시점을 앞당기는 ‘투트랙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우선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의 착공 시점을 내년 상반기(1∼6월)에서 올해 10월로 앞당겨 2024년 하반기(7∼12월)부터 가동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 전기차는 전량 국내 울산공장에서 제조된다. 정 회장은 최근 팻 윌슨 미국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장관과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에서 만나 신공장 착공 등의 사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현대차그룹은 미 재무부가 IRA에 따른 세제 혜택 기준을 4분기(10∼12월)에 정하기에 앞서 미국 측에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2일 국회에서 “IRA 시행을 위해 미 재무부가 (세제 혜택) 기준을 정하게 돼 있다. 우리 업계의 요구사항이 많이 반영되도록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IRA 세부 규정에 한국에 유리한 조항을 삽입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업체들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지난달부터 미국 테네시주 공장에서 전기차 ID.4 생산을 시작했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 고위 관계자들도 미국을 직접 찾아 현지 전략을 점검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럽연합(EU)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을 거론한 상황이다.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WTO 제소에는 시간도 비용도 많이 걸린다. 통상 갈등은 피하되, 미국 시장에서 실리는 취할 수 있는 외교적 조치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한국산 전기차의 보조금 대상 제외에 대해 기존 방침 고수를 시사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22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기업 피해에 대한 질문에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 미국의 위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법률의 한 부분”이라며 “전 세계 파트너들과 기후 목표에 대한 약속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기후 문제에서 진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정의선#현대자동차#인플레법#ira#인플레이션 감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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