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이자 맞수였던… 경제학의 두 이정표[책의 향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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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슨 vs 프리드먼/니컬러스 웝숏 지음·이가영 옮김/552쪽·3만 원·부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 사람들이 무료 음식을 배급 받고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시카고대 출신인 경제학자 새뮤얼슨은 
‘대공황에서 정부가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자유방임주의를 고수한 시카고학파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부키 제공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 사람들이 무료 음식을 배급 받고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시카고대 출신인 경제학자 새뮤얼슨은 ‘대공황에서 정부가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자유방임주의를 고수한 시카고학파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부키 제공
사상에선 적, 사적으로는 친구. 20세기 위대한 경제학자로 불리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1915∼2009)과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관계는 이렇게 요약된다. 두 사람은 1965년부터 18년간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 칼럼을 통해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해결책, 정부의 시장 개입 등의 쟁점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32년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만나 둘 다 각각 94세에 숨을 거둘 때까지 평생 깊은 우정을 나눈 동료이기도 했다.

15일 출간된 책은 ‘시장의 자유’를 둘러싸고 벌어진 세기의 대결과, 그 뒤에 가려졌던 두 사람의 동료애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영국 언론인인 저자는 전작 ‘케인스 하이에크’(부키)에서 20세기 전반의 경제학계 라이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격돌을 다뤘다.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의 대결 중심에는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1960년대 당시 세계 물가상승률이 치솟으면서 미국이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빠진 데 따른 것. 새뮤얼슨을 비롯한 케인스주의자들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수요가 증가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봤다. 그러나 당시 미국 경제는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을 띠고 있었다. 새뮤얼슨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케인스주의의 관에 대못을 박았다”고 말했다.

반면 프리드먼은 승승장구했다. 통화와 인플레이션이 직접 연관돼 있다고 보는 통화주의자인 그는 통화량이 경제성장 속도보다 빨리 늘어난 게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중앙은행이 화폐 공급량을 통해 경기를 조절해야 한다는 프리드먼의 해결책은 효과를 냈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라고 단언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둘러싼 두 사람의 논쟁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새뮤얼슨은 정부가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강력한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프리드먼은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유 시장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는 일은 비록 의도가 좋더라도 자유 시장을 방해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것.

1930년대 대공황과 1960년대 하이퍼인플레이션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는 두 차례 더 찾아왔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위기다. 저자는 이후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은 케인스와 새뮤얼슨의 손을 들어줬다고 평가한다.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수조 달러의 지출을 통해 직접 경기를 부양하는 케인스식 정책을 택했다. 코로나19로 대공황 이래 경제성장률이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하자 미국 영국 등 각국 정부는 록다운(봉쇄)을 선언하고 시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며 큰 정부를 자처했다. 저자는 각국의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해결 방식에 대해 ‘시장에서 정부 입김을 지우고자 했던 프리드먼의 바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평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새뮤얼슨#프리드먼#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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