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흔들리지 않는 일상, 그것이 행복의 조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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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행복론/리처드 이스털린 지음, 안세민 옮김/308쪽·1만7800원·윌북

‘지적 행복론’의 저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은 인류가 산업혁명, 인구혁명을 거쳐 ‘행복혁명’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행복혁명의 시대에는 국내총생산(GDP)보다 개인의 감정이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는 “유엔은 국가별 행복을 추정하는 보고서를 매년 내고, 각국 정부에 행복 데이터를 활용해 경제 정책을 개선하라고 장려하고 있다” 고 했다. 픽사베이 제공
‘지적 행복론’의 저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은 인류가 산업혁명, 인구혁명을 거쳐 ‘행복혁명’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행복혁명의 시대에는 국내총생산(GDP)보다 개인의 감정이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는 “유엔은 국가별 행복을 추정하는 보고서를 매년 내고, 각국 정부에 행복 데이터를 활용해 경제 정책을 개선하라고 장려하고 있다” 고 했다. 픽사베이 제공
‘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소득 증가가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1974년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주장한 이론이다. 그는 1946∼70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등 30여 개국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 증가가 행복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 주장을 담은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은 소득 증가는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경제학의 기존 관점을 뒤집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의 화두를 던졌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행복을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국가가 개인의 행복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등에 대해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소득 수준과 행복에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은 개인이나 집단을 장기간 추적 조사하는 시계열 분석을 통해 도출됐다. 미국의 경우 70년간 실질소득이 3배 증가했지만 행복 수준은 장기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저자는 비교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상황에서 원인을 찾는다. 돈을 많이 벌어도 더 부자인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행복해지려면 비교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건강과 가족, 두 가지는 소득과 달리 타인과 비교하기보다 ‘과거의 나’가 기준이 된다. 내가 가장 건강했던 순간, 가족들과 가장 화목했던 순간이 준거 기준이 된다는 것. 이 기준은 타인과의 비교에 따라 흔들리지 않기에, 이를 달성하면 인간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돈을 더 벌려는 것보다 더 건강해지고, 사랑하는 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논의는 ‘정부가 개인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로 나아간다. ‘그렇다’고 결론을 먼저 낸 저자는 독일 통일 직후였던 1991년 동독 사람들의 행복 수준이 급락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한다. 경기 침체로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었고, 사회안전망이 붕괴되면서 보육과 교육,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정치적 자유는 얻었지만 행복의 중요한 세 요인인 일자리, 건강, 가족이 모두 흔들리면서 동독 사람들은 통일 전보다 더 불행해졌다는 것이다. “복지국가 정책과 국민 행복은 함께 간다”는 저자의 주장은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 건강과 인간관계 등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도 함께 제시한다.

정치 체제가 개인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모든 인종이 투표권을 갖게 된 후 처음으로 민주적인 선거를 실시하자 국민의 행복 수준이 높아졌다. 하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의 행복 수준이 인종차별주의 정책을 펼친 이전 정권 수준으로 돌아온 건 정치 체제가 행복의 결정적인 요인이 아님을 보여준다. 저자는 “행복은 정치체제가 아니라 경제 상황, 건강, 가정생활을 증진시키는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행복을 위해서는 일상의 만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지적 행복론#리처드 이스털린#행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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