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고 부친 죽음 알게 된 유족들… 사전 양해 없어 또한번 상처 입어
‘사죄’ 면담 자리, 결국 포옹 마무리… 밀러, 피해자 이름 딴 장학재단 약속

“당신의 책을 보고서야 아버지가 죽게 된 내막을 알게 됐어요. 큰 충격을 받았어요.”(애덤스)
“아버지는 제 결혼식에 오지 못했고, 손주도 보지 못했어요.”(딸 아지자 알린)

밀러는 갱단 조직원이었던 1965년 애덤스 남매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화이트를 살해했다. 피살된 동료 조직원의 복수를 위해 거리를 배회하다 무고한 청년(당시 18세)을 총으로 쐈다. 당시 식당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화이트에겐 8개월 된 아들(애덤스)과 딸(알린)을 임신한 약혼자가 있었다.
살인 혐의로 소년원에서 4년 반을 복역한 밀러는 출소 후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로 성공했다. 여러 기업의 임원을 거쳐 1999년 나이키 조던 회장에 올랐다. 그는 50년 넘게 가족과 친구들에게 숨겨온 치부를 18일 출간된 자서전 ‘점프’에서 고백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지난해 11월 미리 공개된 밀러의 자서전 내용을 접하고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밀러는 책에서 살인을 했다고만 밝혔을 뿐 피해자의 신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수십 년 간 악몽과 두통에 시달렸다. 죄책감은 죽을 때까지 덜어지지 않을 것이고 피해자의 죽음을 평생 애도할 것”이라고 썼지만 사전에 유족에게 사과하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알린은 “아버지를 두 번 잃은 기분”이라고 했다.
밀러는 지난해 12월 유족에게 사죄하는 자리에서 피해자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책 수익금 일부는 필라델피아 소년원에 기부하기로 했다. 면담이 끝날 무렵 밀러가 피해자의 누나 맥에게 “포옹을 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맥은 포옹에 응했다. 맥은 “신은 항상 다른 이를 용서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알린은 밀러와의 만남 후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 밀러를 적으로도, 친구로도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그가 마음의 평화를 찾길 바랍니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그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