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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56년전 살인’을 고백한 대기업 회장… 피해자 아들과 딸은 용서를 택했다 [사람, 세계]

입력 2022-01-20 03:00업데이트 2022-01-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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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갱단 시절 무고한 사람 죽여”… 나이키 밀러 회장 자서전서 밝혀
책 보고 부친 죽음 알게 된 유족들… 사전 양해 없어 또한번 상처 입어
‘사죄’ 면담 자리, 결국 포옹 마무리… 밀러, 피해자 이름 딴 장학재단 약속
스포츠브랜드 나이키 ‘조던’을 이끌고 있는 래리 밀러 회장(오른쪽 사진)이 최근 자서전을 통해 16세이던 56년 전 갱단 멤버로 활동하며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이때 사망한 피해자의 아들 하산 애덤스(왼쪽 사진)는 그의 고백으로 상처가 되살아났다. 밀러 회장은 지난달 피해자의 가족을 2차례 만나 사과했다. CBS 유튜브 캡처
스포츠용품 기업 나이키의 ‘조던’ 브랜드를 이끄는 래리 밀러 회장(73)은 지난해 1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집배원 가족과 마주 앉았다. 밀러가 56년 전 총으로 살해한 남성의 유족들이었다. 피해자의 아들 하산 애덤스(56)는 필라델피아 집배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신의 책을 보고서야 아버지가 죽게 된 내막을 알게 됐어요. 큰 충격을 받았어요.”(애덤스)

“아버지는 제 결혼식에 오지 못했고, 손주도 보지 못했어요.”(딸 아지자 알린)

어린 시절의 하산 애덤스. CBS 유튜브 화면 캡처
남매는 평생 그리워해 온 아버지를 떠올리며 쓴 글을 이 자리에서 낭독했다. 밀러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피해자의 누나인 바버라 맥(84)은 “내가 30년만 젊었다면 당신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밀러는 “나라도 그렇게 말할 것 같다”고 했다.

밀러는 갱단 조직원이었던 1965년 애덤스 남매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화이트를 살해했다. 피살된 동료 조직원의 복수를 위해 거리를 배회하다 무고한 청년(당시 18세)을 총으로 쐈다. 당시 식당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화이트에겐 8개월 된 아들(애덤스)과 딸(알린)을 임신한 약혼자가 있었다.

살인 혐의로 소년원에서 4년 반을 복역한 밀러는 출소 후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로 성공했다. 여러 기업의 임원을 거쳐 1999년 나이키 조던 회장에 올랐다. 그는 50년 넘게 가족과 친구들에게 숨겨온 치부를 18일 출간된 자서전 ‘점프’에서 고백했다.

1970년대의 래리 밀러. 나이키 제공
밀러는 16일 미국 CBS 방송에 “내 이야기를 통해 잘못을 저지르려는 거리의 또 다른 ‘16세 밀러’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출간 전 인터뷰에서 “한 사람의 실수가 인생 최악의 실수이더라도 나머지 인생을 지배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지난해 11월 미리 공개된 밀러의 자서전 내용을 접하고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밀러는 책에서 살인을 했다고만 밝혔을 뿐 피해자의 신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수십 년 간 악몽과 두통에 시달렸다. 죄책감은 죽을 때까지 덜어지지 않을 것이고 피해자의 죽음을 평생 애도할 것”이라고 썼지만 사전에 유족에게 사과하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알린은 “아버지를 두 번 잃은 기분”이라고 했다.

밀러는 지난해 12월 유족에게 사죄하는 자리에서 피해자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책 수익금 일부는 필라델피아 소년원에 기부하기로 했다. 면담이 끝날 무렵 밀러가 피해자의 누나 맥에게 “포옹을 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맥은 포옹에 응했다. 맥은 “신은 항상 다른 이를 용서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알린은 밀러와의 만남 후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 밀러를 적으로도, 친구로도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그가 마음의 평화를 찾길 바랍니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그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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