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知音)[이준식의 한시 한 수]<127>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1-09-24 03:00수정 2021-09-2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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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 땅 스님이 녹기금(綠綺琴)을 안고, 서쪽 아미봉을 내려와.

날 위해 한 곡조 뜯으니, 뭇 골짜기 휘도는 솔바람 소리를 듣는 듯.

객지 떠도는 이 마음 씻은 듯 맑아지고, 여운은 산사의 종소리에 녹아든다.

어느새 푸른 산엔 날이 저물고, 가을 구름 어둑어둑 겹겹이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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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蜀僧抱綠綺, 西下蛾眉峰. 爲我一揮手, 如聽萬壑松. 客心洗流水, 餘響入霜鐘. 不覺碧山暮, 秋雲暗幾重.) 촉승포녹기, 서하아미봉. 위아일휘수, 여청만학송. 객심세유수, 여향입상종. 불각벽산모, 추운암기중.


-‘촉 지방 승려 준의 고금 연주를 듣고(청촉승준탄금·聽蜀僧濬彈琴)’ 이백(李白·701~762)



춘추시대 고금(古琴) 연주의 명인 백아(伯牙)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한 이는 종자기(鍾子期)였다. 백아가 고산에 오르려는 심정으로 연주하자 종자기는 ‘훌륭하도다! 우뚝 솟은 태산과 같구나’라 했고, 흐르는 물을 떠올리며 연주했을 땐 ‘호탕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다’고 했다. 서로 마음이 통한 것이다. 지음(知音)이란 말이 이래서 생겨났다. ‘음악을 잘 이해하는 사람’에서 출발한 이 말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확장되었다.

지음을 자처하면서 이백은 고향땅 아미산에서 내려온 스님의 연주에 극진한 찬사를 쏟아낸다. 스님의 악기를 녹기(綠綺)라 명명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녹기는 한대의 문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사용했다는 명기이니, 스님의 연주가 범상치 않음을 암시한 것이다. 연주는 ‘뭇 골짜기 휘도는 솔바람 소리’처럼 그 울림이 웅대하면서 또 정갈하다. 하여 객수(客愁)에 잠긴 시인의 마음은 물에 씻기듯 청량해지고, 여운은 때마침 들려오는 산사의 종소리에 은은히 녹아든다. 주변 분위기에 어우러지며 자신을 무아지경으로 몬 연주에 심취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날은 저물고 잿빛 구름이 자욱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가뭇없이 사라지는 가락 속으로 감미롭고 쓸쓸한 나그네의 하루가 저물고 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준식의 한시 한 수#한시#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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