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배우자” 억만장자 우주여행에 美 과학교육도 후끈 [글로벌 현장을 가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1-08-12 03:00수정 2021-08-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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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코로나19로 휴관했다가 지난달 말 재개장한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내부. 이곳은 연간 800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미국 내 최대 박물관 중 한 곳으로 항공우주 분야의 각종 체험을 해보고 강연을 들을 수 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lee@donga.com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이게 뭔지 아는 사람?” “기저귀요. 우주인이 차는 기저귀.” 지난달 말 미국 버지니아주 챈틸리에 위치한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 우주복 모형 앞에 모여 앉아 있던 초등학생 서너 명이 박물관 안내자의 질문에 앞다퉈 대답을 하고는 킥킥거렸다. 어른들이 기저귀를 찬다는 게 낯설고도 신기한 표정이었다. “맞아요. 이 우주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벗는 데에만 2시간이 넘게 걸려요. 우주에서 활동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화장실을 제때 못 갈 수 있으니까 이런 것도 필요하죠. 이 우주복 안에는 최대 8시간을 버틸 수 있는 산소와 물, 전기가 들어 있답니다.”》

안내자의 설명이 이어지자 학생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120kg에 달한다는 우주복의 무게와 곳곳에 부착돼 있는 버튼의 활용 방법,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기밀이라는 특수 헬멧, 행성마다 다르게 제작되는 부츠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모두 끝난 뒤에야 아이들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최근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 같은 억만장자가 잇따라 우주여행에 성공하면서 우주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은 일반인들의 관심과 함께 정부와 민간기업의 관련 분야 투자, 미래세대 교육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로 평가된다.


우주 교육에 2000억 원대 기부

스미스소니언협회는 베이조스 아마존 이사회 의장이 우주여행을 계기로 약속한 2억 달러(약 2300억 원)의 기부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이 금액은 1846년 미 정부가 협회를 설립한 이후 최고 기부금이다. 스미스소니언협회는 7000만 달러를 항공우주박물관 시설 개선에 활용하고 1억3000만 달러는 과학교육 시설 건립에 활용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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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가 운영하는 박물관은 워싱턴 내셔널몰의 한복판에 위치한 본부와 챈틸리의 별관인 ‘스티븐 F 우드바-헤이지 센터’ 등 두 곳이다. 별관에는 본관 건물에 전시할 수 없는 290여 대의 비행기와 우주선, 탐사 로봇 등이 대형 격납고처럼 설계된 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연간 800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미국 내 최대 박물관 중 하나이면서 현지인들에게는 항공우주 분야의 각종 체험과 강연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중요한 교육 장소이기도 하다.

챈틸리 별관은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해주는 안내 프로그램(Explainers Program)을 운영 중이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고등학생들도 안내자로 참여할 수 있다. 빨간색 티셔츠 유니폼을 입고 우주복 전시 코너에서 설명을 하고 있던 대학생 앤드루 씨는 “억만장자들의 우주비행이 성공한 뒤 박물관 방문객들과 각종 문의가 늘어났다”며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2억 달러 투자가 진행되면 박물관 내 과학교육 프로그램이 더 풍성해질 것”이라며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우주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의 시설과 프로그램에 더해 ‘베이조스 학습센터’로 불릴 새 과학교육 시설의 건립은 베이조스 같은 큰손 기부자들이 관련 분야의 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 학습센터에서는 우주항공 분야를 넘어 과학과 기술, 공학, 예술, 수학 등의 전반적인 이공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베이조스 의장은 2억 달러의 기부 계획을 발표하면서 “스미스소니언은 미래를 꿈꾸고 설계하는 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준다”고 평가했다. 로니 번치 스미스소니언협회 사무총장은 “이 역사적인 기부액은 스미스소니언이 세계적인 학습센터를 만들어 미국의 모든 교실에 도달하려는 목표 달성에 도움을 주고 미래 지도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름 달구는 STEM 교육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챈틸리 별관에서 한 안내자가 우주복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관람객이 모여들 때마다 수시로 이뤄지는 이 안내는 박물관이 운영하는 안내 프로그램에 참가한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진행한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lee@donga.com
항공우주를 비롯한 과학 분야 교육에 공을 들이는 학부모들의 노력은 이런 투자나 기부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는 또 다른 동력이다. 기자가 본관과 별관의 박물관을 찾은 지난달 30일은 평일인데도 오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첫 재개장을 한 본관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대형 건물의 맞은편까지 이어졌다.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오는 부모들이 상당수였다. 10대로 보이는 학생들끼리 삼삼오오 들어오는 것도 눈에 띄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6세 아들 브래들리를 데리고 휴가차 워싱턴에 왔다는 크리스틴 사이먼 씨는 “앞으로는 과학 분야에서 더 많은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며 “아이가 이번 여름방학에 과학캠프를 다녔던 터라 이와 관련된 자극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매년 여름이면 미 전역에서 각종 STEM(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의 약자) 분야 교육으로 구성된 여름 캠프가 성황을 이룬다. 워싱턴과 인근 버지니아주에서도 조지워싱턴대나 존스홉킨스대 등이 운영하는 STEM 여름 캠프부터 각 카운티가 담당하는 공립 프로그램까지 수십 종류의 과학 특화 캠프가 열리고 있다. 항공우주 프로그램은 10여 명의 학생이 함께 숲속 캠핑을 하면서 밤하늘의 별을 공부하는 식으로 구성된 수업도 있다.

중학생들도 이런 프로그램에 적지 않게 참여하고 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에서 운영하는 ‘페어팩스 칼리지엣’에는 7∼9학년을 대상으로 한 각종 과학 프로그램들이 2주 단위로 짜여 있다. 예를 들어 ‘항공엔지니어링’ 수업은 뉴턴의 제1, 2, 3법칙 같은 물리학의 기초와 함께 항공우주의 역사, 컴퓨터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활용, 위성 설계의 원리 등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학생들은 바람 터널을 만들고, 소형 로켓을 디자인해 보거나 국제우주정거장(ISS)의 궤도를 추적해 보는 활동을 한다.

“과학캠프는 대학입시에 도움”

어렸을 때부터 과학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교육 분위기는 다양한 관련 분야 활동이 대학입시에도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 뒷받침한다. 동부의 명문 과학고인 토머스제퍼슨(TJ) 고등학교 2학년인 앤디 김 군은 “이곳의 고등학교나 대학입시에서는 우리가 관심 분야에서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는지를 진짜로 중요하게 본다”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보다 과학캠프 같은 활동을 하면서 풍부하고 폭넓게 관심사를 키우는 게 입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부 투자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미 물리학협회(AIP)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회계연도에 STEM 교육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관련 예산이 전년 대비 16% 늘어난 13억 달러로 책정됐고, 나사에는 2000만 달러가 늘어난 1억4700만 달러가 배정됐다. 교육부와 에너지부, 상무부, 국방부 등 관련 부처도 장학금과 교육, 연구, 훈련 등의 예산이 프로젝트별로 500만∼5000만 달러씩 늘어났다.

나사의 랭리연구소가 운영하는 버지니아 항공우주박물관은 최근 150만 달러를 들여 리노베이션 작업을 마무리했다. 관람객들이 직접 만지고 반응을 얻는 ‘인터랙티브 시스템’을 강화해 참여도를 높이고 실제 우주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디지털 스크린의 질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박물관 측은 “이 공간이 학생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우주와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거대한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우주여행#억만장자#과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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