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망을 자초한 고구려의 잘못된 의사 결정[Monday DBR]

최중경 한미협회장 , 정리=이규열 기자 입력 2021-06-28 03:00수정 2021-06-2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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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역사를 통해 미리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암기 중심의 수업은 역사를 지겨운 과목으로 전락시켰지만 전략적 사고를 기르는 데 역사만큼 좋은 것은 없다. 백제의 위기를 방관하고 멸망한 고구려의 의사 결정 과정을 살펴보자.

660년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백제와 동맹을 맺은 고구려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8년 뒤 고구려도 나당연합군에 패해 멸망했다. 고구려군이 당나라군을 상대하는 전술은 당나라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하지 못해 굶주리길 기다렸다가 역습하는 청야작전이었다. 하지만 당군은 한강을 장악한 신라로부터 식량을 지원받았고, 결국 668년 고구려는 식량 부족으로 백기를 들었다.

백제 멸망이 고구려에 명백한 위험인데 고구려가 참전하지 않은 배경과 이유는 무엇일까? 남은 기록이 거의 없어 어느 정도 추리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선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해 고구려와 백제 사이 육로가 막혀 고구려가 백제의 위기를 제때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왜국이 백제에 지원군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고구려가 이를 몰랐을 리는 없어 보인다. 백제에 있던 고구려인들이 비둘기를 이용하거나 뱃길을 통해 통신하는 것도 가능했다.

당나라가 기만전술을 폈을 수도 있다. 요동(현 중국 랴오닝성 동남부)으로 군을 움직여 고구려의 시선을 끌고 백제에 기습적으로 상륙해 고구려가 적기에 대응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추정이다. 그렇더라도 고구려는 계략을 안 순간 백제를 돕기 위해 달려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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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상황으로 백제가 너무 일찍 무너져 대응할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삼국사기’에 따라 의자왕이 항복했다고 배우지만 중국 사서 ‘당서 소정방전’에는 웅진성(현 공주) 성주 예식이 항복했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로 2006년과 2010년에 각각 중국 시안에서 예씨 집안 묘지명이 발견됐다. 김영관 제주대 교수에 의하면 2006년 묘지명의 주인공은 예식이며, 2010년 발견된 예식의 손자 예인의 묘지명에는 예식이 의자왕을 당나라 고종황제에게 바쳤다고 써 있다.

끝으로 고구려가 백제 멸망 후 닥칠 위험을 과소평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400년 가야-왜 연합 공격으로 위기에 몰린 신라를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구한 후 신라는 오랜 기간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신라와 당이 연합해 식량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남은 기록을 바탕으로 추론하면 마지막 가설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 고구려는 백제 부흥군이 활약하던 661∼664년 백제와 연합작전을 폈어야 한다. 그러나 백제 부흥군이 사비성(현 부여)을 포위해 당군을 위기로 몰았는데도 고구려는 침묵했다. 이 때문에 여제동맹(麗濟同盟·고구려와 백제의 군사적 제휴)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660년 고구려의 오판은 민족의 강역이 한반도로 제한되는 출발점이 됐다. 이민족을 끌어들인 신라는 ‘통일’이라지만 대동강과 원산을 잇는 선 이남의 좁은 지역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이런 삼국의 몰락에서 우리는 뭘 배울 수 있나. 리더는 국가 또는 조직의 존재를 위협하는 최대 위험이 무엇인지 미리 파악하고 대비해야 한다. 고구려의 최대 위험은 신라-중국 또는 백제-중국의 동맹이었으니 이들이 중국과 붙는 걸 막아야 했다. 중국과의 동맹을 대비한 플랜B도 있어야 했다. 642년 백제군이 대야성(현 경남 합천)을 함락하자 신라는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했고, 고구려가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자 대당 외교에 나섰다. 고구려의 리더가 백제와 신라의 갈등을 중재하고, 신라를 보듬었다면 660년 백제 멸망과 668년 고구려 멸망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학교 수업에서는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원인을 심도 있게 다루지 않는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유는 660년 잘못된 의사 결정 때문이다. 백제가 의자왕의 실정 때문에 망했다는 것도 승자의 왜곡이라 봐야 한다. 다음 세대가 이런 의사 결정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면 더 깊게 정세를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최중경 한미협회장 choijk1956@hanmail.net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6월 2호(323호)에 실린 ‘백제의 위기를 방관한 고구려의 패착, 삼국의 운명을 가르다’를 요약한 것입니다.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고구려#패망#자초#잘못된 의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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