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법 바꿔가며 노력했는데”… 2년전 ‘같은 비극’ 유족의 눈물

이소연 기자 입력 2021-06-11 03:00수정 2021-06-1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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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건물 붕괴 참사]
“너도 다른 사람도 못지켜줬구나” 2년전 잃은 딸 찾아가 탄식
“법-규정 바뀌면 뭐합니까 현장-공무원은 변하지 않는걸”
2년 전 잠원동에서도… 2019년 7월 4일 오후 철거 건물이 무너져 예비 신랑과 예물반지를 찾으러 가던 이모 씨가 숨졌던 서울 서초구 잠원동 붕괴 사고. 이 씨의 아버지 이원민 씨는 “2년이나 지났지만 똑같은 참변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개탄했다. 동아일보DB
“지금 막 딸이 잠들어 있는 납골당(봉안당)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어제 광주에서 벌어진 붕괴 사고가 우리 딸을 앗아간 사고와 너무나도 닮았더군요. 딸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못 지켰다고….”

2019년 7월 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로 소중한 딸 이모 씨(당시 29세)를 잃었던 아버지 이원민 씨(65). 9일 광주 동구 재개발 현장에서 벌어진 철거 건물 붕괴 소식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고 한다.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그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딸도 예비 신랑과 함께 차를 타고 지나가다 철거 건물이 무너지며 참변을 당했다. 곧 있을 결혼을 앞두고 예물반지를 찾으러 가던 참이었다. 이 씨는 1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다음 달이면 딸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라며 “떠나간 딸을 위해 세상을 바꾸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딸을 보고 왔다”며 울먹거렸다.

이 씨가 세상을 바꾸지 않은 건 아니다. 그는 지난해 5월 시행한 ‘건축물관리법 개정안’을 이끈 주역이었다. 사고 뒤 현장의 관리 감독을 맡았던 감리는 철거업체가 추천한 지인이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해당 감리는 현장에 친동생을 대신 내보내기도 했다. 이런 엉터리 감리체계를 바꾸기 위해 이 씨는 열심히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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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바람이 담긴 건축물관리법 개정안에는 일정 규모의 건물을 해체 공사할 때는 지방자치단체가 감리를 직접 지정해 관리체계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연면적 500m² 이상이거나 높이 12m 이상, 지상·지하층을 포함해 3개 층을 초과하는 건물은 모두 해당한다.

하지만 광주에선 또다시 무용지물이었다. 관할 구청이 감리를 지정했지만 현장에 상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씨는 “법이 바뀌면 뭐하고, 규정이 바뀌면 뭐하나. 공무원이나 현장 관계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데…”라며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철거 공사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 벌어진 사고라 들었어요. 지자체가 감리만 정하면 뭐합니까. 나가서 직접 살펴봐야죠. 제가 좀더 목소리를 키워서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에서 관리 감독을 하라고 촉구했어야 했는데 한스럽습니다.”

이 씨는 9일 사고로 목숨을 잃은 9명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먼저 보낸 딸의 2주기를 앞두고 최근 심란했던 그였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유족들에게 무슨 말을 전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가족을 잃었는데 어떤 말을 한들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네요. 딸에게 약속한 것처럼 지켜주질 못해서 미안합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감독강화#잠원동#비극#광주 건물 붕괴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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