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코드’ 처럼… 사진 엽서 속 근대건축물 추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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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건축물 소개 앞장 손장원 교수

옛 우편엽서에 등장하는 인천 동구 송월동 일대의 사진. ① 1911년 일본인이 동구 묘도에 객실 7개, 해수탕 등을 갖춰 운영하던 위락시설 ② 한강 하구, 강화도 등 여덟 개의 경치를 관망할 수 있다는 팔경원 ③ 일본인 아리마(有馬)가 세운 유마정미소 ④ 일본인 노보루(高杉昇)가 세운 간장공장 ⑤ 청주를 생산하던 길금양조장. 나중에 아사히(朝日)양조장으로 발전한다 ⑥ 미국인 타운센드가 스탠더드오일의 판매권을 얻어 세운 창고 ⑦ 1905년 일본인 이나다(稻田勝彦)가 매립지에 세운 방적공장. 광복 후 동일방직이 됐다. 손장원 씨 제공
근대문물이 유입된 인천 개항장 문화지구 주변엔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의 답동성당, 외국인의 사교장이었던 제물포구락부, 일본제1은행 등 구한말∼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이 즐비하다. 100년 안팎의 근대건축물이 50여 채 있고 50년 넘은 건축물도 700채 이상 남아 있다. 그러나 인천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오쿠다정미소와 미쓰비스줄사택, 국내 최초의 비누공장인 애경사, 아베식당, 신일철공소 등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비지정문화재 건물들이 개발 논리에 밀려 철거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손장원 씨(59·재능대 실내건축과 교수·사진)가 옛 사진엽서를 통해 근대건축물의 가치를 ‘소환’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예술작품들 속에 감춰진 뜻과 의미를 분석해 진실에 다가서려는 것처럼 옛 건물의 역사성과 장소성이 무엇인지를 사진엽서에서 발굴하고 있다. 그의 ‘사진엽서 읽기―추론과 검증’ 이야기는 지난해 3월부터 인천시립박물관 소식지 ‘박물관 풍경’에 소개되고 있다.

첫 이야기는 손 씨가 소장하고 있는 7000장가량의 옛 엽서 중 하나인 인천 중구 신포동 중심상가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상가 도로를 활보하는 세 사람의 뒷모습 사이로 양쪽 길가에 목조 2층 상점들, 나무 전신주,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 가로수가 펼쳐져 있다. 전신주엔 일장기가 걸려 있다. 손 씨는 이 엽서사진의 촬영 장소에 대해 “일제강점기 인천시내에서 가장 번성한 중심상업지로, 현재 중구 중앙동 3가와 4가가 만나는 지점에서 청실홍실(현 분식점)을 거쳐 인천여상 정문(옛 인천신사 입구)에 이르는 거리”라고 설명했다.

사진 속에 상점 간판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쯔보이(坪井)이발관, 나가가와(中川)문방구, 아키다(秋田)상점(현 중화루 중식당), 코노(河野)상점(현 진흥각 중식당), 다나까(田中)양품점(옛 제일은행), 오카다(罔田)시계점, 후루다(吉田)양품점(현 버텀라인 음악카페) 등이다. 그는 1920, 30년대 같은 거리를 찍은 사진이 실린 다른 엽서 2장과 비교하면서 상점 발자취를 찾아가고 있다.

요즘 인천 서구 수도권쓰레기매립장의 2025년 사용 종료 여부로 논란이 일고 있다. 손 씨는 근대 개항기 쓰레기소각장처럼 보이는 건물(인천 동구 만석동)을 촬영한 사진엽서도 분석한다. 경인전철 인천역∼동인천역 철길을 달리는 기차 사이로 유마(有馬)정미소, 고삼(高杉)장유, 길금(吉金)양조장, 석유회사 창고, 동양방적 인천공장 용지가 나타난다. 일본식 기와지붕 건물의 합각지붕과 맞닿은 벽면에 ‘길금주조장(吉金酒造場)’이란 글자가 또렷이 보여 이 일대가 동구 송월동1가로 짐작된다.

길금양조장 옆 건물 몇몇에는 지붕 위에 또 다른 ‘솟을지붕’이 있고, 크고 작은 굴뚝 4개가 하늘로 뻗어 있다. 손 씨는 “지붕 일부가 솟아 있는 솟을지붕은 먼지가 많이 발생하는 공간이나 냄새가 심한 건물에서 환기를 목적으로 설치되는 것이다. 높은 굴뚝은 무언가를 태우는 장치가 안에 있다는 말이다”라며 건물 추적에 들어갔다.

그는 1930년 5월 15일 발행된 ‘인천부 전화번호부’를 뒤져 인천부 청소사무소가 동구 송월동1가 14번지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어 인천부사, 후보연구소 아카이브 자료를 참고삼아 송월동 일대의 온라인지도, 지적아카이브 비교작업을 한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이 건물은 신동공사(외국인 치외법권지대인 각국 조계지 관리기관)가 운영하던 송월동 소각장인데, 1914년 조계지 철폐에 따라 인천부에 인계한 것이다. 초기에 소각로 1, 2기를 운영하다 쓰레기 발생량이 증가함에 따라 점차 소각로를 늘려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굴뚝 4개는 그만큼의 소각로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손 씨는 이런 방식으로 인천향교 등 인천 관련 옛 엽서 50장에 대한 분석 작업을 마친 상태다. 또 암 투병 와중에도 문화재로 지정된 인천 근대건축유산 25개의 도면을 중심으로 건축물 스토리를 엮은 ‘문화재가 된 인천 근대건축’이란 책을 최근 출간했다. 그는 “공공기관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근현대사 자료를 한곳에 집적화해서 누구나 활용 가능하도록 하는 ‘아카이빙’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인천건축물#손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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