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국물과 부추의 조화… ‘돼지국밥’의 풍미[석창인 박사의 오늘 뭐 먹지?]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입력 2021-05-19 03:00수정 2021-05-1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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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시 오포읍 ‘토박이네’의 돼지국밥. 석창인 씨 제공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제주도에 갈 때마다 육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향토음식을 몇 끼 먹습니다. 각재기국(전갱이국), 옥돔국 그리고 갈칫국도 많이 찾는 메뉴 중에 하나입니다. 너무 비릴 것 같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시나브로 생선국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생선 비린내를 잡아내는 노하우가 분명 있겠지만, 재료의 신선도가 제일 중요한 포인트겠지요.

부산에서도 제 상식을 사정없이 무너뜨렸던 음식이 있는데 바로 돼지국밥입니다. ‘세상에나 돼지고기로 국을 끓이다니!’ 하며, 돼지고기 누린내를 어찌 감내하는지 사회 초년병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엔 순댓국도 굳이 찾아 먹지 않을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한번 맛들인 후에는 속칭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가 되어 이제는 돼지국밥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면 천릿길도 마다하지 않는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어느 유명 요리사 겸 작가도 이에 천착하더니 아예 돼지국밥집을 직접 차렸다고도 하는군요.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돼지는 소와 닭에 비해 인기가 없던 가축이었습니다.일단 잡식성이어서 사람들과 먹이 경쟁을 해야 했고, 토종 돼지의 크기가 워낙 작아 사육의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돼지 사육이 늘어났고, 돼지고기를 즐겼던 이북 사람들이 전쟁 때 피란 내려와 영남지역에 돼지국밥 문화를 널리 퍼뜨렸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돼지국밥은 여러 형태가 있지만 크게 부산식과 밀양식으로 나뉩니다. 육수를 뼈로 내느냐 살코기로 내느냐로 구분하기도 하고, 부추를 넣느냐 혹은 파를 썰어 올리느냐에 따라 나누기도 합니다. 국물은 소뼈로 우려내고 고기는 돼지를 쓰기도 하고, 사용하는 고기 부위가 식당마다 다르기도 한데 굳이 지역적으로 구별할 까닭은 없습니다. 무교탕반을 흉내 내어 서울식 곰탕처럼 내놓는 식당까지 있으니까요. 다만 경상도에서 돼지국밥을 먹을 땐 부추라는 표준어보다는 ‘정구지’라는 사투리를 써야 말맛에 더하여 밥맛까지 좋아집니다. 정구지란 말은 영화 ‘변호인’에도 등장합니다. 주인공 송강호가 “돼지국밥에 정구지를 많이 넣어야 맛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부산사람들은 환호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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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유명 돼지국밥집들에 가보면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국밥은 대체로 어른들의 음식이지만, 부산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가족 단위도 많고, 심지어 할머니가 아기를 등에 업고 와서 국밥을 떠먹이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아빠 사자가 주인공 심바를 절벽에서 떨어뜨려 살아나오게 하며 어른으로 키우는 것처럼 어릴 때부터 돼지국밥을 먹는 훈련을 통해 부산 기질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고 보니 ‘부산사람들 혈관에는 돼지국밥 육수가 흐른다’는 세간의 말이 결코 허튼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해장이 필요할 때 돼지국밥 먹으려고 KTX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십여 년 전부터는 집에서 가까운 경기 광주시 오포읍 ‘토박이네’를 찾습니다. 덤으로 내주는 정구지도 넉넉하며, 찬으로 나오는 섞박지와 김치 역시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마에 송송 맺히는 땀방울엔 분명 어제의 알코올 성분이 있을 테지요.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돼지국밥#국물#부추#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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