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즐기는 미슐랭 셰프의 정찬[정기범의 본 아페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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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파리지앵들은 언제쯤 코로나19에서 벗어나 테이블에서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20일 기준 프랑스의 하루 확진자 수는 여전히 3만여 명을 웃돌고 있다. 19일 자정 이후로 파리 등 확진자 수가 많은 16개 적색지역이 셧다운됐는데도 눈에 띄는 감소세가 보이지 않으니 시민들은 물론이고 정치권의 고심도 깊어갈 수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률은 최저치로 곤두박질했고 전 국민 자가 면역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지난해 3월 이후 프랑스에서는 전국적으로 1개월간의 외출 금지령이 두 차례 발동됐고 현재 레스토랑과 카페에 앉아 먹는 것이 금지돼 있다. 프랑스 전체 레스토랑 중 10∼20%만이 테이크아웃을 위해 문을 열고 있는 실정. 그와 달리 반사이익을 얻게 돼 전년 대비 매출이 성장한 산업이 있으니 바로 배달 음식 플랫폼이다. ‘우버 잇’은 외국인 관광객의 급감으로 큰 어려움을 겪다가 배달 음식 시장이 살아나면서 업계 1위로 확고히 올라섰고 딜리버루, 저스트잇 등 배달 전문 플랫폼들이 그 뒤를 쫓고 있다.

세계적인 미식 가이드북인 미슐랭 가이드북에 이름을 올린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들이 배달 서비스에 동참하게 된 것은 실리가 자존심을 이긴 결과라 볼 수 있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알랭 뒤카스 그룹에서는 ‘알랭 뒤카스 셰 무아’를 론칭하면서 셰프의 요리를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고, 파리를 대표하는 여성 스타 셰프인 엘렌 다로즈의 레스토랑인 조이아도 배달 서비스를 론칭했다.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투르 다르장 역시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배달 음식을 내놓아 제대로 된 파인 다이닝에 목말라하는 파리지앵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 레스토랑들의 배달 서비스는 서울 면적의 6분의 1인 파리 내에서 대부분 가능하며 배달된 음식을 맛있게 데워 먹을 수 있는 온도와 시간을 알려주는 세심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다.

클래식한 인테리어와 격식 있는 음식 문화로 미식의 절대 강국을 자처해 온 프랑스의 고급 레스토랑들이 앞다퉈 배달 음식 서비스를 시작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1년여간 레스토랑이 제대로 문을 열지 못하면서 레스토랑에서 일해 온 상당수의 해외 인력이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공백이 발생했고 주 이용자인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이 급감해 마냥 손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인재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다. 프랑스 정부는 레스토랑, 카페, 호텔 등 코로나19로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산업 종사자를 위해 고용인에 대한 임금 지급, 레스토랑에 최저 운영자금 지원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다가올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레스토랑 스스로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바이러스와 테크놀로지의 속도 경쟁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미슐랭#셰프#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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