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의 킹’ 하늘 스튜디오로 떠나다

조유라 기자 입력 2021-01-25 03:00수정 2021-01-25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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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방송인 래리 킹, 코로나 입원뒤 숨져
25년간 CNN ‘래리 킹 라이브’ 진행, 회당 최대 1630만명 시청한 프로그램
오바마 등 美 대통령 7명 인터뷰… 정보-재미 더한 ‘인포테인먼트’ 선봬
‘토크쇼 전설’ 래리 킹이 1999년 12월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와 손을 맞잡으며 인터뷰하고 있다. 내슈빌=AP 뉴시스
미국의 전설적인 ‘토크쇼 황제’ 래리 킹이 23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88세.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 코로나19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 입원했고 이 병원에서 숨졌다.

두꺼운 안경과 멜빵, 걷어 올린 셔츠 소매 등이 트레이드마크인 그의 대표작은 1985년 6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25년간 CNN에서 진행한 ‘래리 킹 라이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는 이 쇼에서 제럴드 포드부터 버락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7명의 미국 대통령을 모두 인터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 등 세계적 유명 인사가 줄줄이 출연했다. 억만장자 로스 페로는 1992년 이 방송에서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 동부 시간 기준 매일 0시부터 1시간씩 주 5회 방송됐고 회당 최대 1630만 명의 시청자를 모았다. 킹은 이 프로그램을 포함해 총 5만 건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해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바디상’ 2회, 에미상을 1회 수상했다. CNN 창업자 테드 터너는 “내 인생에서 위대한 경력 2개는 CNN을 만들고 킹을 영입한 것”이라며 킹의 죽음을 애도했다.

킹은 다른 토크쇼 진행자들과 달리 여유로운 태도로 출연자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다른 쇼가 ‘못이 박힌 침대’라면 킹의 쇼는 ‘비단 천이 덮인 안락의자가 있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늘 편안한 복장을 고수했고 스스로를 ‘언론인’이라고 칭하지 않았으며 어려운 질문과 사전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출연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킹은 자신의 쇼를 ‘정보(information)’와 ‘재미(entertainment)’가 결합된 ‘인포테인먼트’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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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뉴욕에서 유대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킹의 본명은 로런스 하비 자이거다. 그는 10세 때 아버지를 잃고 어렵게 자랐다.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택배기사 등으로 돈을 벌었다. 1957년 남부 플로리다주 지역 방송국에서 청소부로 일하다 당시 진행자가 펑크를 낸 자리에 대타로 들어가 DJ로 데뷔했다. ‘래리 킹’이라는 예명도 이때 지었다. 당시 상사가 “유대계 느낌이 덜 나는 이름을 지으라”고 조언했고, 한 광고를 보고 즉흥적으로 ‘킹’이란 이름을 따왔다. 전성기 시절 그의 연봉은 700만 달러(약 77억3500만 원)에 달했다.

개인적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5명의 자녀 중 2명을 먼저 보냈고 7명의 여성과 8번 결혼했다. 그중 한 명과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다. 1960년, 1978년 도박으로 두 번 파산을 선언했다. 사업가 친구에게서 1971년 5000달러를 훔쳤다는 혐의가 제기됐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기소되지 않았다. 2010년 은퇴 후 건강이 급속히 악화됐다. 여러 차례 심장마비를 겪었고 폐암, 협심증, 당뇨 등도 앓았다. 1987년 심장 수술을 받은 뒤엔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심장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래리 킹 심장재단’을 설립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코로나19#래리 킹#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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