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구할 신무기? 초고속 개발 코로나 백신 “검증 부족” 우려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8일 18시 13분


코멘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 백신 접종이 이달 8일부터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 속속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31일 중국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의문의 폐렴 발생을 보고한 지 약 1년 만이다.

전 세계에서 확진자 7400만 명, 사망자 165만 명을 낳은 전대미문 전염병과 싸울 수 있는 무기를 드디어 손에 쥐게 됐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하지만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접종 거부 논란, 부국(富國)과 빈국(貧國)의 확보 격차, 일부 제약사의 폭리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과연 인류는 백신을 통해 끔찍한 코로나19와 결별할 수 있을까.


●인류의 신무기 ‘mRNA 백신’


현재 출시된 코로나19 백신은 크게 3가지 형태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독일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엔테크, 미국 제약사 모더나가 택한 ‘mRNA’ 방식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러시아가 개발한 스푸트니크V 백신에 쓰인 ‘바이러스 전달체 방식’ △중국 국영 제약사 시노백과 시노팜 등이 사용한 ‘불활성화’ 방식이다.

불활성화 백신은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병원체를 죽여 인체에 주입한다. 이를 통해 인체가 감염에 저항할 수 있는 사전 훈련을 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기술 난이도가 높지 않아 가격이 싸고 면역 반응 또한 강하다. 독감 백신 등이 이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대규모 시설에서 바이러스, 세균 등을 배양해야 하므로 안전 위험이 있고 신속한 대량생산이 쉽지 않은 편이다.

mRNA 백신은 병원체를 주입하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의 일부 단백질을 인체 스스로가 만들어 내도록 하는 유전자(mRNA)를 투입하는 형태다. 면역 세포는 우리 “이 만든 이 바이러스 단백질을 감지해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인식하고, 나중에 실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몸에 침입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한다.

특히 짧은 시간 안에 대량생산이 가능해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는 안성맞춤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인류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 대한 우려가 있고 기술 난이도가 높으며 가격이 비싼 편이다. 또한 RNA 자체가 열에 민감해 보관과 유통이 까다롭다. 화이자 백신을 영하 70도에서 보관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이러스 전달체 방식은 또 다른 바이러스(전달체)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DNA를 체내에 전달하고, 인체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부 단백질을 생성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흔히 감기를 일으키는 아데노 바이러스가 전달체로 쓰이며 에볼라 백신이 이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방식 역시 기술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미국 존슨앤존슨 또한 이 방식으로 백신을 개발하고 있으며 조만간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자본·행정력·기술력 총동원



과거 백신 개발에는 빠르면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렸다. 수십 년간 수억 명의 감염자를 양산하고 있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C형 간염 백신이 아직 없다는 점만 봐도 코로나19 백신 개발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알 수 있다. 그 이유로 각국이 민관 합동으로 행정력과 자본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고위험 고수익’ 전략을 쓴 데다 코로나19 백신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예감한 각국 제약사가 대거 달려들었다는 점이 꼽힌다.

영국 데이터 분석업체 에어피니티는 각국 정부가 백신 개발에만 65억 파운드(약 9조 원)를 투입했다고 분석했다.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 같은 비영리재단 등에서 후원한 자금도 약 15억 파운드에 달한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 개발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데다 성공률 또한 높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는 각국에서 ‘실패해도 좋고 일정 정도의 부작용도 감내하겠다’는 식으로 독려하니 제약사 역시 동력이 생긴 셈”이라고 진단했다.

각국이 대형 제약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바이오앤테크 등 ‘될 성 부른’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한 것도 주효했다. 미국은 모더나의 백신 개발에만 10억 달러를 지원했다. EU 역시 바이오앤테크에 연구비 1억 유로를 투자했다.

그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에볼라, 지카바이러스 등이 창궐하면서 mRNA 백신을 개발할 기초 기술 연구가 어느 정도 끝난 상태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것도 빠른 개발을 촉진시켰다.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설계도(기초 기술)를 미리 갖고 있었던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건물(백신)을 빨리 올릴 수 있었다”며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이 역설적으로 상업성을 높여 각국 제약사가 다 뛰어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바이오앤테크의 수석 부사장이자 mRNA 분야의 권위자인 카탈린 카리코 박사가 내년이나 내후년쯤 노벨생리의학상을 탈 것”이라며 mRNA 백신이 의학계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내다봤다. 헝가리 태생의 여성 생명과학자인 카리코 박사는 이번 백신 개발의 핵심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퇴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으로 임상시험 지원자 모집 또한 순조로웠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개발에 참여한 아담 핀 영국 브리스톨대 교수는 가디언에 “통상 몇 주에서 몇 개월이 걸리는 참가자 모집이 하룻밤 사이에 끝났다”고 전했다.


● 부작용 면책…인허가 규제도 없애


각국은 신속한 접종을 위해 여러 제약사에 백신 부작용에 대한 광범위한 면책권을 부여했다. 미국은 2005년 제정한 ‘공공준비 및 비상사태 대비법’(PREP)에 따라 공중보건 위기 통제를 돕는 제품에 한해 면책권을 보장하고 있고 이번 사태에 이를 적용했다.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에 따른 배상이 필요할 때 제조사가 아닌 정부 재정으로 충당한다는 의미다.

이런 규정이 없는 유럽연합(EU) 또한 부분 면책권을 인정했다. EU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서 부작용이 발생해 배상이 필요할 때 제약사와 EU가 공동 부담하기로 했다. 일본 또한 서구 제약사와 백신 계약을 맺으며 면책권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도 패스트트랙이 가동됐다. 미국의 ‘초고속작전’은 백신 개발과 제조, 배포 과정에서 불필요한 절차적 지연을 막기 위해 보건복지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립보건연구원(NIH), 생물의학첨단연구개발국(BARDA), 국방부 등 여러 부처가 협력했다. 수전 바이스 미 펜실베이니아대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센터 책임자는 뉴욕타임스(NYT)에 “과거 몇 주씩 걸렸던 CDC 허가가 이틀 만에 떨어졌다”고 전했다.

영국 역시 화이자 백신 심사 과정에서 사전검토 작업 ‘롤링 리뷰’를 도입해 인가를 서둘렀다. 임상시험 자료가 완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약사가 제출한 자료만 먼저 살펴 속도를 높였다.


●백신에 대한 불안은 남아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있다.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가 이달 3~7일 미 성인남녀 11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백신을 맞겠다”는 응답자가 47%에 그쳤다. 26%는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했다. 최근 한 영국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5%가 “백신을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백신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코로나19 백신의 개발 기간이 짧아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소셜미디어에 범람하는 백신 관련 허위정보, 정부에 대한 불신 등도 거부감에 기여하고 있다. 1990년대 한 영국 의사가 ‘백신이 자폐증을 야기한다’는 허위 주장을 의학전문지에 게재해 큰 파장을 야기했다. 거짓임이 드러났는데도 아직도 이를 언급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미국의 흑인 가운데 일부는 1932년부터 40년간 보건당국이 매독 연구를 위해 흑인 600명을 대상으로 비밀생체 실험을 자행했던 악몽 때문에 백신에 극도의 불신과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올해 세계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까지 거셌던 탓에 백신을 ‘백인 엘리트의 기득권 유지 도구’로 여기는 기류가 형성됐다. CNN에 따르면 미 흑인의 35%는 “백신이 안전하고 무료 접종이 가능하다 해도 맞지 않겠다”고 했다.

소수 제약사가 막대한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것에 대한 논란도 제기된다.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내년 화이자의 백신 매출 규모를 190억 달러로 예상했다. 올해 매출(9억7500만 달러)의 20배가 넘는다. 화이자가 2022~2023년에도 93억 달러의 추가 백신 매출을 거둘 것이라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 또한 모더나의 내년 매출을 132억 달러로 예상했다. 지난해 매출(6000만 달러)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모더나 주가는 이미 올해에만 약 700% 상승했다.

특히 모더나의 백신 개발에는 정부 지원, 즉 세금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특정 기업이 막대한 수익을 얻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미국 존슨앤존슨이 “백신 판매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도 대비된다.

앨버트 뷸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 스테판 방셀 모더나 CEO 등이 백신 개발 호재를 공표한 직후 주가가 급등한 시점에 자사주를 대거 매도한 것 또한 비판받고 있다. 다만 “그 정도 수익이 예상되지 않는다면 제약사 또한 개발비를 날릴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 혁신을 위해 일정 부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반론 또한 나온다.

백신 개발과 승인 과정이 빨랐던 만큼 효과 검증이 미진했다는 점도 우려를 낳는다. 정기석 교수는 “임상시험 후 1년 간 경과를 두고 항체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지 등을 관찰해야 하는데 이번 코로나19 백신은 상황이 워낙 다급하다보니 시험 완료 약 한 달 만에 긴급 승인이 났다”며 효력이 오랫동안 유지되면 좋지만 효과가 3~4개월에 불과하면 코로나19의 빠른 종식에도 상당한 차질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