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빗장 연 원격의료… “의료사고 책임 등 정책보완후 본격도입 서둘러야”

박성민 기자 입력 2020-12-05 03:00수정 2020-12-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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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병원들 비대면의료 점차 확대
혈압-혈당측정 등은 자택서 가능… 병원내 감염 우려 한시 허용 추세
개업의 반발로 도입 번번이 무산
“상급병원 쏠림 방지책 마련 필요”
경기 평택시 평택보건소의 ‘비대면 건강관리 서비스’에 참여한 주민이 혈압을 재고 있다. 집에서 측정한 혈압, 혈당, 걸음 수 등을 담당 간호사와 영양사, 운동지도사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평택보건소 제공
지난달 26일 자택에서 직접 혈압을 잰 이모 씨(93)는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수축기 혈압이 209mmHg까지 올라 정상범위(120mmHg)를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평소 고혈압을 앓고 있던 이 씨는 혈압이 일시적으로 높아진 것으로 여겨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수치가 이 씨가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을 통해 보건소 담당 직원에게 자동으로 전달됐다. 전날 측정값(170mmHg)도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담당 간호사는 이 씨에게 전화를 걸어 곧바로 내원하도록 안내했다. 3일 동안 약 처방을 받은 뒤에야 이 씨의 혈압은 평소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 씨가 이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보건복지부가 지난달부터 시작한 ‘비대면 건강관리 서비스’ 덕분이다. 기존의 65세 이상 노인 대상 방문 건강관리 서비스를 비대면으로 전환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자택 방문에 제약이 생긴 점을 고려했다. 혈압 혈당 활동량 체중 등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전국 24개 보건소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이 씨가 거주하는 경기 평택시 평택보건소에서도 현재 100명이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 코로나가 불 지핀 ‘비대면 의료’
코로나19 사태 이후 의료 현장의 바뀐 풍경 중 하나는 이 같은 ‘비대면 의료’의 활성화다. 비대면 의료는 원격수술 및 모니터링 등을 포함한 ‘원격의료’와 인공지능(AI) 등 질병 예방을 위한 소프트웨어 제품을 뜻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현행 의료법상 국내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으로 진단이나 처방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의료진 간 협진만 가능하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원격의료의 빗장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올 2월 전화 상담과 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병원 내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복지부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전화 상담은 총 103만9571건, 진료비 청구액은 약 130억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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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대구경북 지역 무증상·경증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설된 생활치료센터에서도 원격의료가 도입됐다. 환자의 체온, 혈압 등 생체 신호가 주요 병원으로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서울대병원도 경북 생활치료센터에 모니터를 설치해 원격 화상진료를 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강원도의 원격의료 시범사업 참여 병원은 지난해 1곳에서 올해 8곳으로 늘었다.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의료기기의 발달로 병원에서만 할 수 있었던 검사가 자택에서도 가능해졌다”며 “고령 환자와 만성질환자 증가로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 원격의료 규제 완화 추세
원격의료를 먼저 도입한 해외에서도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의료 서비스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일본은 올 4월부터 온라인과 전화를 통한 복약 지도가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첫 진료 때는 의사와 꼭 만나야 했지만, 현재는 초진부터 원격의료가 가능하다. 미국은 의료인이 부족한 지역에서만 원격의료 보험(메디케어)을 적용하던 것을 모든 지역으로 확대했다. 급여 대상 항목도 80여 개를 추가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원격의료 도입까지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2000년 첫 시범사업 시작 후에도 개원의 중심의 대한의사협회(의협)의 반발로 도입은 번번이 무산됐다. 오진 가능성이 우려되고, 상급 병원에 환자가 쏠려 동네 병의원이 고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오히려 규제가 강화돼 서비스가 중단된 경우도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2011년부터 해외 원격 화상진료를 해 왔지만 2017년 서비스를 중단했다. 원격진료에 제약이 없던 해외 환자에 대해서도 규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도 원격의료 도입을 더 늦출 수 없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정세영 분당서울대병원 디지털헬스케어 연구사업부 교수는 “비디오 가게가 망하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시대가 됐듯이, 원격의료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며 “다만 1차 의료기관을 위한 대책 마련과 의료 사고 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등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원격의료#비대면 건강관리 서비스#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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