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쓰는 법]“과거에도 지금도 여성은 고독하죠”

민동용 기자 입력 2020-10-24 03:00수정 2020-10-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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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펴낸 나희영 편집장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글 두 편이었다. 2017년 가을 번역가 김명남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옮겨놓은 미국 작가 캐럴라인 냅(1959∼2002)의 ‘혼자 있는 시간’과 ‘내 인생을 바꾼 두갈래근’. 혼자 사는 여성의 고독과 고립의 글, 혐오하던 몸이 해방의 몸이라는 깨달음의 글에 나희영 바다출판사 팀장(41·사진)은 출간을 결심했다. 3년여 만인 지난달 ‘명랑한 은둔자’(캐럴라인 냅 지음·김명남 옮김)가 나왔다.

“편집하다가 우는 일이 드물고 그런 원고를 만나는 경우도 많지 않은데,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났어요. 내가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어쩜 이렇게…. 진짜 저 같은 거예요.”

책은 1990년대 혼자 살던 냅의 가족, 일, 우정, 반려견과의 사랑, 고독, 고립, 자기혐오, 삶의 슬픔, 자기수용, 자기이해를 망라한다. 독자를 품는 스펙트럼이 넉넉하다. 21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난 나 팀장은 “독자들이 ‘이게 90년대 글이라고?’ 하며 놀란다. 이물감이나 시간적 거리감을 못 느낀다”고 했다.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 ‘남자보다 개가 좋아’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 같은 냅의 책은 2000년대 중반 국내에 출간됐다. 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칙릿(chick-lit·젊은 여성을 겨냥한 소설) 부류로 간주됐다. 반면 ‘명랑한 은둔자’는 30, 40대 여성을 흡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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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는 물론이고 X세대가 지금 40대잖아요. 1인 가구가 늘고, 결혼 안 한 직업여성이 많고. 그동안 고독이라는 주제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거의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여성의 고독이 조명을 받아요. 혼자 사는 여성의 일, 삶 같은 코드가 독자에게 닿는 거죠.”

한 달여 만에 5쇄를 찍은 이 책에 대한 독자 반응은 “나를 표현한 것 같다” “내 친구 같다” “거의 다 밑줄을 쳤다” 등 공감으로 수렴한다. 가벼운 위로, 산뜻한 이야기 위주의 요즘 에세이에 지친 독자도 이 책을 집어 든다.

“가볍지 않다는 게 차별 지점이지 않나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려는데 화장실에 가서 숨겨놓은 술을 마실 만큼 심한 알코올 중독이나 거식증 이야기 등 질릴 정도로 솔직한 고백은 읽는 사람 몸을 지치게 하는 느낌도 있어요. 그럼에도 다정함, 따스함이 그걸 상쇄하죠.”

냅의 글은 삶의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상향 곡선을 그린다. 자신을 ‘명랑한 은둔자’라고 정의한 것처럼 삶을 잘 살아내고자 한 의지가 번뜩인다. 나 팀장은 “삶의 격랑을 거쳐 온 시간과 경험이 생의 선물이며 거기서 승리감을 맛본다는 것이죠”라고 풀이했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가 기르던 18세 된 개를 올해 6월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냅의 원고를 읽으면서 정리가 된 거 같아요. 그냥 데려오고 닥칠 일들은 다 받아들여 보자는 생각.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는데, 지금 잘 지내고 있어요. 좋아요.”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명랑한 은둔자#나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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