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안 옮기고 기다린 딸… 44년만에 화상 상봉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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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남대문서 잃어버린 윤상애씨, 美입양… 유전자 채취덕에 엄마 찾아
쌍둥이 언니 “널 버린게 아니다”… 尹씨 어눌한 한국말로 “엄마 사랑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44년 전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 이응순 씨(가운데)가 미국에 살고 있는 
윤상애 씨와 온라인으로 만나고 있다. 윤 씨의 쌍둥이 언니 윤상희 씨(왼쪽)도 함께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44년 전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 이응순 씨(가운데)가 미국에 살고 있는 윤상애 씨와 온라인으로 만나고 있다. 윤 씨의 쌍둥이 언니 윤상희 씨(왼쪽)도 함께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엄마는 너를 만나 소원을 다 풀었다. 잘 커줘서 정말 고맙다, 상애야….”

15일 오전 10시경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

컴퓨터 화상통화 화면엔 10분 정도 별 다른 게 뜨지 않았다. 하지만 이응순 씨(78)는 넋이 빠진 듯 초조하게 화면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드디어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 씨는 꺽꺽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함께 있던 이 씨의 가족도 덩달아 눈물을 훔쳤다.

모니터에 등장한 여성은 데니스 마카티 씨(47). 한국명 ‘윤상애’인 44년 전 잃어버린 이 씨의 딸이었다. 1976년 6월 외할머니와 외출했다가 남대문시장 근처에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같은 해 12월 미국으로 입양됐다.

행방을 알 길이 없던 모녀는 최근 유전자 비교분석을 통해 혈연관계를 확인했다. 당장이라도 부둥켜안고 싶었겠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이날 비대면 상봉부터 치렀다. 44년 만에 만난 그들에게 20분의 화상통화는 너무나 짧았지만 오고가는 말 한마디마다 깊은 아픔과 애틋함이 쉼 없이 묻어 나왔다.

이날 어머니 이 씨의 손에는 빛이 바랠 대로 바랜 종이 한 장이 쥐어 있었다. 어린 시절 윤 씨의 얼굴이 실린 ‘아이를 찾습니다’란 전단이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해온 이 씨는 혹시나 딸을 다시 찾을까 봐 같은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호적도 꺼내 보이며 “아직 (호적이) 살아있다. 너는 엄마의 딸”이라며 통곡했다.

40대 후반이 됐지만 세 살배기 때의 얼굴이 남아 있던 상애 씨도 감정이 벅차올랐다. 워낙 어릴 때 헤어져 본인 이름도 ‘문성애’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딸은 “엄마, 예뻐요” “엄마, 사랑해요”라며 어색한 한국말로 마음을 대신했다.

특히 쌍둥이 언니인 윤상희 씨(47)를 보더니 “우리 목소리가 똑같다”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상희 씨는 “절대로 널 버린 게 아니다.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한다”며 흐느꼈다. 상애 씨는 “가족이 날 찾고 있는 줄 몰랐다. 버려진 줄 알았다”며 “쌍둥이 언니와 오빠가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날 헤어진 가족의 만남은 정부의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 덕이었다. 올해 1월부터 경찰청과 외교부, 보건복지부가 협력해 재외공관에서도 유전자 채취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상애 씨는 2016년 입양인 지원단체 ‘미 앤 코리아’를 통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유전자를 등록했다고 한다.

이듬해 윤 씨의 한국 가족이 경찰의 권유를 받고 유전자를 등록하며 이들의 만남이 급진전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 이들이 가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도 덕에 상애 씨가 보스턴 총영사관에서 검사를 받으면서 44년 만의 상봉이 성사됐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조지윤 인턴기자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4학년
#화상 상봉#남대문#윤상애#입양#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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