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택환 교수 “노벨상 수상이요? 학생들에게 BTS의 ‘Not Today’ 틀어줬어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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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0월 8일 15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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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화학상 후보인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겸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장이 7일 오전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전화를 받고 있다. 2020.10.7 © News1
노벨화학상 후보인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겸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장이 7일 오전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전화를 받고 있다. 2020.10.7 © News1
“(노벨화학상) 발표하는 날, 강의 시작 전에 학생들에게 방탄소년단(BTS)의 낫 투데이(Not Today)를 틀어줬어요. (웃음)”

한국인 최초로 노벨화학상 수상의 영예를 누릴 수 있는 ‘유력 후보’로 거론돼 화제가 된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56)가 “올해는 받을 확률이 100% 없다”라는 본인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낸 방식이다. 공부만 할 것 같은 50대 과학자가 BTS의 노래에 본인의 심정을 빗댄 ‘위트’가 넘친다.

매년 가을, 노벨상 시즌만 되면 “일본은 줄줄이 받는 노벨상을 왜 한국은 못받느냐”는 자조가 ‘레퍼토리’처럼 등장하지만 올해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 찾았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이번 일로 화학 분야 전체에 제 이름을 알렸다는 게 보람”

현 교수는 크기가 균일한 나노입자를 대량으로 합성할 수 있는 ‘승온법’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 족집게’로 불리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가 예측한 올해의 노벨 화학상 유력 수상자로 거론됐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수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크리스퍼 캐스나인(CRISPR/Cas9) 유전자 가위와 게놈 편집 기법을 개발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52)와 제니퍼 A. 다우드나(Jennifer A. Doudnar·56)를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현 교수는 “노벨상 반열에 들어간 것만 해도 굉장히 영광스럽다”며 “이번에 상을 받은 두 분은 언젠가 당연히 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분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두 분 모두 2015년 클래리베이트에서 선정됐던 분들인 점을 감안하면 저한테도 (기회가) 올수도 있지 않겠냐”며 “다만 나노입자 분야에서 노벨상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제 앞에 20년 선배들이 계시다”며 웃어 보였다.

현 교수는 나노입자 분야에서 연구업적을 쌓아왔다. 2001년에 승온법으로 균일한 나노입자를 바로 합성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을 미국화학회지(JACS)에 실었다. 2004년에는 승온법을 개선해 균일한 나노입자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머터리얼스(Nature Materials)’에 게재했다.

◇“나는 ‘연구비 꽃길’을 걸은 사람이다…정부 지원 굉장히 감사해”

그는 처음 서울대 교수 임용 후 승온법 관련한 두 개의 주요 논문을 일찍 발표한 뒤 2002년 정부의 창의연구단에 꼽혔고 2012년에는 IBS에 선정됐다.

2011년 설립된 IBS는 국내 유일의 기초과학 전문연구기관으로 ‘노벨상 산실’을 표방하며 만들어졌다. 선정된 단장을 중심으로 해당 단장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현 교수는 “2012년 IBS 단장이 되면서 원없이 자유롭게 연구했다”며 “창의연구단일 때의 연구도 괜찮았지만 IBS 합류를 통해서는 최소 두 단계는 내 연구가 업그레이드된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나는 ‘연구비 꽃길’을 걸은 사람”이라며 “그런 면에서 현 정부, 지난 정부들의 지원에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 교수는 “대한민국에 저를 포함해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들이 많이 생겼다”며 “해외 주요 연구기관들은 설립된지 100년이 더 넘었는데 우리나라는 기초과학 연구가 지원된지 30년 만에 이처럼 위상이 올라간 것은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건 인간성이다…창의성은 자유에서 나온다”

현 교수는 ‘서울대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라는 물음에는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건 인간성이다. 혼자서 잘나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며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부대낄 때 세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과학자의 창의성은 자유에서 나온다”며 “정부에서 도와준다면 저보다 더 뛰어난 후배 과학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 교수는 “과학자가 신나게 연구할 수 있는 동력은 결국 프리덤(freedom·자유)”이라며 “자유롭게 연구자가 생각하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자유롭게 누구나와 함께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나는 그렇게 신나게 연구한 덕분에 지금 이 위치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 교수는 “올해로 연구를 23년째 하고 있는데, 이번에 노벨상 후보로 들어가며 선정된 2개의 논문은 나노입자 디자인과 합성 등을 다룬 초창기 논문”이라며 “향후 10년은 나노기술을 활용해 난치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큰 꿈”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수상의 영예는 안지 못했지만 최근 6년새 노벨상 분야에 한국 과학자들의 존재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희망은 남아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현 교수의 수상이 불발됐지만 아쉬운 상황은 아니다”라며 “나노화학 분야는 굉장히 뜨거운 주제로 현 교수는 아직 살아있는 후보고 우리는 ‘세 명의 노벨상 대기자’를 갖게 됐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현 교수와 함께 유룡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교수,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도 여전히 수상 가능성이 있는 연구자들로 꼽힌다. 유 교수는 2014년, 박 교수는 2017년 각각 클래리베이트 화학 분야 명단에 이름을 올렸었다. 모두 화학 분야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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