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노출’ 백신접종 자고나면 늘어… 예방사업 부실 민낯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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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건중 605건 중단조치 이전 접종… 청소년용을 엉뚱한 이들에 놔줘
전주선 생후 8개월 아기, 독감백신 맞고 다리 마비 증상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의 ‘배달사고’를 계기로 국가 예방접종사업의 부실한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접종 중단 조치에도 불구하고 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독감 백신이 수백 명에게 접종됐다. 게다가 접종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유통 과정의 사고를 미리 막지도 못하고 사후 대처도 허둥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9일 질병관리청(질병청)에 따르면 상온 노출이 의심되는 백신 접종은 25일 기준으로 224건 확인됐다. 이후 접종 건수가 추가로 보고되면서 26일 324건, 27일 407건, 28일 873건으로 늘었다. 정부는 정확한 상황도 파악 못 한 채 22일 “해당 백신의 접종 사례가 없다”고 발표한 것이다.

해당 의료기관의 상당수는 정부의 백신 관리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접종이 확인된 873건 가운데 605건은 중단 조치가 내려진 21일 이전에 접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독감 백신은 정부가 만 13∼18세 청소년용으로 조달한 물량이다. 접종은 22일 시행될 예정이었다. 즉 의료기관이 청소년에게 접종해야 할 정부 조달 물량을 엉뚱한 사람에게 접종했다는 뜻이다. ‘상온 노출’과 상관없이 이미 의료 현장에서는 백신 물량이 뒤섞인 채 접종이 이뤄진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백신 부실 관리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질병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생백신의 콜드체인 유지관리 현황분석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7월∼2019년 2월 보건소와 민간 병원 86곳 중 백신 적정 온도(2∼8도)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곳은 26곳(30.3%)에 불과했다.

당시 연구를 맡은 서울대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오명돈)이 조사한 결과 보건소 39곳의 경우 24곳(61.5%)은 냉장고 온도가 2도 아래로 내려가거나 8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등 적정 온도로 유지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병의원 47곳 중에서도 적정 온도를 유지한 곳은 11곳에 그쳤다. 이런 잘못된 보관 방식은 백신의 효능 저하로 이어졌다. 질병청은 당시 보고서를 바탕으로 추가 조사를 거쳐 백신 관리지침을 만들고 올 7월 이를 의료기관에 배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 지침마저 의료기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29일 전북 전주에서는 독감 백신을 맞은 생후 8개월 된 남자아이가 다리에 마비 증상을 보여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에 착수했다. 질병청은 이날 브리핑에서 아이가 맞은 백신은 상온 노출 백신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미지 image@donga.com / 전주=박영민 기자
#상온노출#백신#예방사업#부실#마비#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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