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소판 감소증 앓는 40대 임신부… 코로나에 혈액수급 어려워져
의료진 헌혈 동참에 무사히 출산 “모자 상봉 도와준 은혜 평생 간직”
지난달 16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이 병원 복도 곳곳엔 ‘혈액 급구’를 알리는 게시물이 붙었다. 산부인과 김영주 교수(57·여)가 붙인 것이다. 김 교수는 병원 전산 차트망 메인 화면에도 ‘혈액형이 O형인 직원의 도움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직원들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도 같은 내용의 글을 남겼다.
김 교수는 이틀 뒤 혈소판 감소증을 앓고 있는 40대 임신부 A 씨의 출산을 위해 제왕절개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의 혈소판 정상 수치는 평균 22만 개가량인데 A 씨는 평균치의 2%가 채 안 되는 3000개 정도였다. 혈소판은 상처가 났을 때 피를 멎게 하는 등 혈액응고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A 씨의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아 “의사 생활 27년에 처음으로 겁이 났던 수술”이라고 했다.
김 교수가 O형 피를 급구할 당시엔 이대목동병원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병원이 보유 혈액량에 여유가 없던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헌혈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6∼18일 기준 혈액 보유량은 적정 보유량인 5일 치를 밑돌았다.
김 교수가 백방으로 ‘혈액 급구’를 알린 덕에 수술 전까지 의사와 직원 등 20여 명이 팔을 걷고 헌혈에 나섰다. 1, 2년차 전공의들도 헌혈에 동참했다. A 씨와 같은 혈액형인 게 행운이었다고 한 전공의 강미나 씨(33·여)는 “아직 1년차라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한계가 있을 때가 많다”며 “작지만 환자에게 확실한 도움을 준 것 같아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A 씨는 지난달 18일 2.3kg의 남자아이를 낳았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는 한 달 가까이 입원치료를 받았다. 코로나19로 면회가 제한돼 A 씨는 퇴원할 때까지 아기를 2번밖에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A 씨는 아기가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이 기적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A 씨는 24일 병원 의료진과 직원들 앞으로 보낸 편지에 “저희 모자가 무사히 상봉할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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