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현 선수 장례식서, 협회 관계자 ‘여기저기 얘기 좋지 않아’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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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7월 3일 10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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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등의 폭행과 갑질에 못이겨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청소년·국가대표 출신 철인3종경기 유망주 고(故)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고인은 경찰을 찾아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뭐 이런 일로 왔냐’는 경찰관의 핀단에 절망, 더 힘들어했다는 주변 증언이 나왔다.  (고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 News1 남승렬 기자
지도자 등의 폭행과 갑질에 못이겨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청소년·국가대표 출신 철인3종경기 유망주 고(故)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고인은 경찰을 찾아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뭐 이런 일로 왔냐’는 경찰관의 핀단에 절망, 더 힘들어했다는 주변 증언이 나왔다. (고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 News1 남승렬 기자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국가대표 출신인 고(故) 최숙현 선수(23)의 장례식장에서 대한철인3종협회 관계자가 ‘좋은 일도 아닌데 굳이 급하게 여기저기 얘기하는 건 좋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최숙현 선수를 지도한 적이 있는 이지열 전 트라이애슬론 코치는 3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인터뷰에서 “(장례식장에서) 동료 선수들이 모여서 숙현이를 애도하고 있을 때 그분(철인3종협회 관계자)이 오셔서 ‘이게 뭐 좋은 내용도 아니고, 좋은 일도 아닌데 굳이 급하게 여기저기 얘기하는 건 좋지 않겠다’ 이 정도 선에서 이야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코치는 “제가 그 당시 (협회 관계자의 말이 나왔을 때) 장례식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당시에 그 내용을 들었다던 동료 선수들, 그리고 숙현이 고모님이 그 내용을 저한테 전달해주셨다”며 “제가 사실 좀 믿기지도 않지만 정말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정말 저는 가만히 못 있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대한체육회 등에 따르면 최숙현 선수는 지난달 26일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최 선수는 올 4월 경주시청의 감독과 동료들에게 지속적인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에 신고했지만, 대한체육회·대한철인3종경기협회·경북체육회 등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 전 코치는 조사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저도 굉장히 화가 나고 답답한 부분”이라며 “선수가 그 정도까지 진정을 할 정도면 정말로 참을 만큼 많이 참고, 괴로운 상태였을 거다. 굉장히 어떻게 보면 운동을 그만할 각오를 하고 그런 진정을 했을 텐데, 제 생각에는 행정기관 쪽에서는 아직도 ‘선수들이 지도자들한테 맞는다’, ‘체벌을 받는다’, 이런 걸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는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게 맞다”며 “저도 그 상황에 대해서는 고 최숙현 선수의 아버님한테 들은 내용이라서 사실관계는 따져봐야겠지만, 어쨌든 아무리 가벼운 사안이라도 신고가 들어오면 처리를 해야 되는 게 맞는데, 왜 그게 그렇게 묻혀 있었는지 저도 참 답답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까) 이런 사건이 반복이 되는 거고, 선수 한 명이 생을 달리해야만 뭔가를 하는 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체육계는 일반 다른 사회 분야하고 다르게 보는 게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한다”며 “왜 꼭 선수들은 고통스럽게 해야 되고, 맞으면서 해야 되고, 그런 인식이 아직까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또 이 전 코치는 “일단은 고 최숙현 선수가 실업팀이었으니까, 직장인 아니겠느냐”며 “어떻게 보면 직장 선수고, 직장인이었는데, 이런 사건은 그렇게 흔한 건 아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일어난 것 같지는 않고, 전지훈련장에서만 비상식적인 폭행이 일어났던 건데, 사실 이런 것은 일상이 아니라 한두 번만 당하더라도 선수에게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다. 체급경기 같은 선수들 보면 체중 때문에 굶거나 그런 경우는 자주 봤지만, 강제로 먹이는 것은 이번에 저도 처음 들었다”고 설명했다.

최숙현 선수의 아버지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소속팀 관계자에게 ‘식빵 20만 원어치를 (한 자리에서) 다 먹으라’는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고, 이를 같이 당한 동료가 증언하기도 했지만 관계기관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전 코치는 “일단은 가장 급한 것은 가해자를 엄단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그냥 조용히 엄단을 할 게 아니라 많이 알려야 된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예비 가해자들한테도 경고를 해야 된다”며 “그런데 제일 걱정하는 것은 이번에도 그렇게 우리가 바라는 만큼의 그런 처벌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 저는 굉장히 그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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