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親文 패권주의[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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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끝까지 감싸고 금태섭은 보복성 징계
의석수와 강경 지지층에 갇히면 민심은 실종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4·15총선이 거여(巨與)의 출범으로 끝나자 어느 정도 힘자랑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조국의 이중적 태도를 정면으로 비난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기권 표를 던진 금태섭은 ‘괘씸죄’에 걸렸다. 사실상 낙천의 쓴잔을 마신 사람을 총선이 끝났는데도 당론 위반죄까지 씌워 보복 징계한 것은 확인 사살에 가깝다. 거창하게 헌법과 자유투표를 명시한 국회법 논란까지 갈 것도 없다. 금태섭 저격은 여당에서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공론의 장은 당분간 기대하지 말라는 분명한 메시지다.

윤미향 감싸기는 더 압권이다. 당 대표가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는 윤미향 관련 의혹에 대해선 아예 함구령을 내렸으니 당내에선 윤미향의 ‘윤’자도 꺼내기 어려워하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도 어제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지켜져야 하고,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라고 했지만 정작 윤미향 이름 석 자는 언급하지 않았다.

같은 비례의원인 양정숙은 부동산 의혹으로 제명됐지만 윤미향은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는데도 엄호를 받고 있다. 양정숙은 적장이었던 박근혜의 ‘정수장학회’ 출신이니 두 사람을 동렬에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위안부 운동의 대의와 위안부 단체의 회계 부정 의혹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도 팔은 안으로 굽었고, 윤미향은 진보좌파 네트워크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친문 진영은 일이 있을 때마다 ‘원 팀(one team)’을 외친다. 사소한 이견이 있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하나로 뭉친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이런 원 팀 정신은 노무현 정권 시절 내부 전쟁으로 자멸한 아픈 기억을 반면교사로 삼았을 것이다. 노무현 청와대는 주요 인사를 할 때마다 여당이 연신 제동을 걸자 ‘대통령 인사권에 도전 말라’고 강경하게 맞섰다. 뜨거운 쟁점이었던 사학법 개정안을 놓고 노무현이 야당안을 받자고 하자 여당 원내대표가 반기를 드는 사태도 벌어졌다.

그러나 ‘원 팀’이 같은 진영으로 뭉친다고 해도 민심을 얻지 못하면 거품일 수밖에 없다. 그 색깔이 짙어지면 폐쇄적 경향도 강해지기 마련이다. 박근혜 탄핵에 이은 4연속 선거 승리로 ‘친문 순혈주의’는 더 굳어지는 듯하다. 이러니 편을 가르고, 우리 편을 더 찾고, 선을 긋는 진영 논리가 득세하면서 우리 편에는 더 관대하고, 상대방에는 더 엄격한 이중 잣대가 일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상 친문 패권주의다.

여권에서 친문 패권주의가 득세할수록 국론을 모아야 할 남북 관계나 한일 이슈 등에서 강경파의 목소리는 커지게 된다. 6일 현충일 행사 초청 대상에서 북한을 자극할 제2연평해전, 천안함 유족들을 처음에 뺀 것도 이런 기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패권 강화와 중도층 이반은 동전의 양면이다.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세력은 극단적 흐름에 휩쓸리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당의 이념적 경계를 넘어 중간층 호응까지 이끌어낼 수 있어야 국정 기반을 안정적으로 다질 수 있는 것이다. 소속 정당, 그 강경 지지층의 전폭적인 사랑에 취하면 민심의 저류를 놓칠 수 있다.

여당 초선으로 총선 불출마를 한 표창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생각이 조국 사태 후 달라졌다”고 자괴감을 토로했다. 조국 의혹은 커지는데 ‘우리 편’이라고 무조건 감싸야 하는 상황에 힘들어했고, 선거를 이겼으니 적당히 넘어가려는 당내 분위기를 우려했다.

여당은 176석의 압도적 의석수를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친문들도 노무현의 대선후보 지지율이 1% 남짓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의석수가 만능은 아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거여 출범#윤미향 감싸기#더불어민주당#친문 패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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