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선거 컨설턴트 전병민 “2년 후 대선 시대정신은 ‘경제회생’…보수에 다시 기회 올 것”

허문명 기자 입력 2020-05-17 12:45수정 2020-05-1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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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상황에서 곳간 열쇠 쥔 여당에 표 던질 수밖에
● 한국 포퓰리즘 선거, 이번부터 본격 시작
● 미래통합당 난타보다 일으켜 세우는 데 힘 모아야
● 사과 아닌 사과나무 나눠주는 사람 뽑아야
● 광신도 지지층 아닌 상식인이 지지하는 주자 나와야
한국의 선거 컨설턴트 1세대로 알려진 전병민(74) 씨는 “돈 풀기가 이번 총선의 승패를 갈랐다”고 말했다. 1993년 2월 17일 김영삼 정부 첫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에 내정됐다가 장인의 전력 문제로 물러난 그가 이후 오랜 기간 정치 컨설팅을 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공직자 재산등록, 금융실명제, 하나회 해체 등 김영삼 정부 개혁정책 상당 부분이 그의 아이디어였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를 5월 5일 어린이날 만났다.

한국 포퓰리즘, 이번 선거부터 본격 시작

- 여당 압승 원인을 ‘돈 풀기’로 지적해 화제가 됐다.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마치 전시 중에 치른 선거나 다름없었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렸고, 경제가 올 스톱 상황이어서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했다. 죽고 사는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가 동시에 걸린 게 전쟁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유권자는 누구를 택하겠는가.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선거였다고 본다. 역대 선거를 보면 보수와 진보 지지층을 대략 45대 45로 보는데 탄핵 효과 때문에 보수층 상당 부분이 이른바 중도(부동층)로 이동했다. 이 사람들이 미래통합당을 찍을까말까 갈등하던 차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공포가 번지기 시작했다. 우선 살고 보자…. 절박한 상황에서 곳간 열쇠를 쥔 여당에 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돈 풀기에 나서고 있다.

“이번 정부 여당의 승리는 그런 점에서 합법적 포퓰리즘의 결과다.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코로나 사태로 벼랑 끝에 선 유권자에게 돈 봉투를 흔들어댔지만 아무도 그걸 비판할 수 없었다. 세계의 모든 정부가 그랬으니까. 나는 여기서부터 우리 정치의 비극이 시작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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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세력이 돈의 위력을 알기 시작했다. 과연 앞으로 이들이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뿌리치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한 지자체장은 돈 뿌리기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이번 코로나 사태 때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돈 뿌리기가 유권자의 주목도를 높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지도가 몇 주 사이에 치솟는 마법을 과연 어떤 정치인이 외면할 수 있겠는가. 한국적 포퓰리즘이 코로나 사태로 시작된다면 우리나라의 비극도 거기서 출발할 수 있다고 본다. 정치인들이 한번 재미를 보면 그 마력을 끊기 어렵고 국민도 한번 맛을 들이면 끌려간다. 우리나라는 특히 그럴 확률이 높아 보여 우려스러울 뿐이다.”

-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에서 인구의 20%가 국외로 탈출했다는 보도를 봤다. 재작년 스페인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기차역마다 노숙자가 떼를 지어 서성거리고 있었다.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 탈출민이 몰린 것이다. 베네수엘라를 보며 주목할 부분은 포퓰리즘으로 나라를 망쳐놓은 세력이 심판받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국민의 지지를 얻어 집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번 빠지면 벗어날 수 없는 마약과 같은 게 포퓰리즘이란 걸 우리 국민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 일에 양식 있는 지식인들, 언론 등 모두가 나서야 한다.”

- 국민이 돈 뿌리기에 동의할까.

“투표 행태를 보면 국민 수준을 알 수 있다. 1등 국민은 공동체의 미래를 보고 투표한다. 2등 국민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한다. 3등 국민은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투표한다. 우리 국민은 어디쯤에 있을지, 짐작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 인공지능, 로봇 등이 지배하는 4차산업 혁명이 이뤄지면 ‘일자리 종말’이 올 것이니 이참에 기본소득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우리에겐 한참 후 이야기다. 스위스는 국민이 반대했다.”

유시민 前장관 예측이 맞은 이유

- 어떻든, 이렇게까지 여당의 압승을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분석가 대부분이 그동안 적용해 오던 일반적 상황에 대한 분석 툴을 대입해 예측하다 보니 빗나갔다고 본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선거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상황에서 치러졌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선거 막판에 유시민 씨가 180석 이야기했을 때 ‘그의 예측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유씨가 여권의 정보를 전해 들었을 것으로 봤고, 여권은 경찰 정보를 참고했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선거에 관한 한 경찰 정보가 가장 신뢰할 만했다. 밑바닥 민심을 훑고 있기 때문이다.”

- 총선 결과를 두고 여야 모두 코로나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있다.

“당연하다. 정부 여당은 국민 심판을 통해 자신들이 신뢰와 지지를 얻었다고 포장하고 싶은 것이고 야당은 코로나 때문에 패배했다고 하면 ‘코로나 핑계 대지 말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못 할 것이다.”

- 여론조사를 직접 해보지 않고도 예측이 가능한가.

“나는 과거에 선거가 있을 때는 의도적으로 투표 얼마 전에 자영업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는데, 대체로 그들의 여론이 선거 결과에 비슷하게 나타난다. 자영업자들이야말로 민심의 바로미터다. 이번에도 그들의 동요가 컸을 것이다.”

-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두고 자영업자의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아는데.

“자영업자가 550만 명이다. 연계된 사람까지 포함하면 1500만 명쯤 될까. 이 사람들이 문재인 정권 들어 가장 큰 피해를 봤기 때문에 정부 비판 세력으로 등장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많은 수도권 자영업자의 태도가 바뀌었을 것이다. 배가 파도에 휩쓸려 쓰러질 판인데 배를 갈아타고 싶겠는가.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했으니 일단 믿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 이번에 높은 투표율과 사전투표 열기는 어떻게 보나.

“나도 사전투표를 했다. 아침 11시에 갔는데 30여m 줄을 서야 했다. 모두 표정이 누군가와 투쟁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 같았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대략 읽을 수 있었다. 유권자 머릿속에는 야당은 뭐든지 반대하는 정당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에 일단 여당 찍자는 표정으로 읽혔다.”

- 선거 때만 되면 막말 파동이 있다. 그런 후보들은 사전에 걸러져야 하는 게 아닌가.

“몇 가지 막말 영향이 조금은 있었겠지만 결정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 기간 중 사소한 말실수나 행동이 경쟁 상대에 의해 막말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것이 투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유권자의 후진성을 나타낸다고 본다.

영국인의 투표 행태를 설명하는 얘기 중 영국 주부들은 투표장에 가기 전 자신의 몇 년치 가계부를 들춰 본다는 말이 있다. A당이 집권했을 때 흑자였나 적자였나, B당이 집권했을 때는 어땠나 하는 식이다. 이런 국민에게 선거운동 기간의 말 몇 마디가 영향을 미치겠는가.

가령 이번 선거에서 나경원 후보에게 싸움닭이라는 프레임을 거니 여기저기서 나경원 죽이기 식의 공격이 시작됐다. 아니 야당의 원내대표 역할이 뭔가. 여당과 싸우고 흥정하는 게 아닌가. 나경원에게 싸움닭은 오히려 야당의 여성 원내대표에게 줄 수 있는 훈장 같은 것이어야 하는데 조롱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볼 줄 모르는 유권자는 저질 정치인들의 동원 정치에 이용되기 딱 좋다.”

야당 난타보다 손잡고 일으켜 세워야
5월 8일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주호영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당선됐다.

- 총선 후 야당은 쑥대밭이다.

“망한 집안이 조용할 리가 있겠나.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국민들도 쓰러진 자에게는 회초리보다 손을 잡아 일으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보수가 예뻐서가 아니다. 정치의 상식은 양 날개가 건강해야 바르게 날 수 있다고 하지 않나.”

- 황교안 전 대표 리더십에 비난의 화살이 몰렸다.

“취임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다. 정치 리더의 첫 번째 조건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구심력인데 오랜 공무원 생활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그런 능력을 키울 여지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두 번째 중요한 것이 결단력인데 너무 신중한 나머지 결단의 시기를 계속 놓치면서 좌고우면하는 모습으로 비친 것이 치명적이었다. 종로 출마를 놓고도 당 대표라는 사람이 차일피일 미루는 모습을 국민이 어떻게 평가했을까. 정치인에게 결단의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 같다. 신앙으로 다진 몸가짐과 언행에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다. 그래서 현실 정치와는 맞지 않다고 본다.”

- 현실 정치는 비인격자들이 어울린다는 말처럼 들린다.

“남재희 전 의원은 정치는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했다. 종교인이나 다름없는 황 전 대표가 정치하면서 부딪치는 현실적인 벽도 컸을 것으로 본다.”

- 미래통합당에는 인재가 없다.

“첫째는 계파 간 싸움이 오랫동안 진행되면서 인적 손실이 컸고, 두 번째는 제도적 문제인데 과거에는 전국구 제도를 통해 각계의 전문가들이 충원됐고 이들이 다시 지역구로 나가든지 정부로 들어가는 식이 되면서 엘리트 충원의 선순환 구조를 이뤄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여성할당제가 생기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나 화제의 주인공을 찾아내 그 자리를 메우다 보니 인재 충원이 어려워진 게 아닌가 본다. 이 문제는 앞으로 여야가 함께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차기 대선주자의 조건들

- 대통령 후보감도 안 보인다.

“과거 3김씨가 대통령선거에 도전한 시기에는 시대정신이 명확했다. 군정 종식과 민주화가 그것이었다. 그때는 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한 후보가 몇 번을 나와 떨어져도 양해가 될 수 있었다. 시대정신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대적 이슈가 한 해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어떤 한 인물이 시대 변화와 관련 없이 자주 출마한다는 것을 양해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본다.

나는 보수의 차기 주자가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군대를 꼭 다녀온 사람이어야 한다. 이 조건은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둘째는 해외유학파를 내세웠으면 한다. 해외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면 더욱 좋겠다. 글로벌 시대에 국제적 안목이 없는 사람들이 정권을 맡다 보니 손바닥만 한 나라에서 과거 캐기에 몰두하고 우리 민족끼리나 외치며 이 문명사회에서 가장 후퇴한 북한의 지도자 동지나 쳐다보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식 안목을 가진 리더십으로는 국제 경쟁에서 점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셋째는 광신도 집단의 지지가 아닌, 상식 있는 국민 대중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우리는 짧은 민주정치사에서 광신도 집단에 의해 떠받쳐진 권력이 어떤 비극으로 끝났는지 노무현·박근혜 두 대통령을 통해 보았다. 넷째는 가급적 40, 50대였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서, 없는 사람 속사정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그런 맞춤형 후보가 있을까

“없으면 밖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이런 조건을 내세우는 것은 좌파 후보와 비교우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 집권 여당은 절대로 그런 인물을 내세울 수 없는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념 세력이 당정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실용적 리더십보다는 이념적 리더십을 내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령 비(非)이념적 인물을 내세우더라도 그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니 무늬만 비이념적이 될 것이다.”

- 과연, 보수는 살아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네 번의 선거에 패배했다. ‘초토화가 됐다’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임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본다. 혹자는 보수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왼쪽으로 이동이 불가피하며 진보우파로 가라는 식으로 제안하지만 그거야말로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까지 보수는 이념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지도자들을 잘못 만나서 망한 것이다. 오히려 보수 이념을 발전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지 왼쪽으로 가라는 식의 논리는 궤를 벗어난 것으로 본다.

또 한 가지는 총선 패배 이후 우리 사회 주류가 교체됐다느니 하는 식의 다소 선동적 언어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 나라 보수들이 정신적 혼란, 무기력, 소외감 등을 느끼고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그런 국민에게 몇 번의 선거 패배로 우리의 가치, 신념, 원칙이 무너져 내릴 만큼 한국 보수가 연약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도전을 받았지만 보수의 가치를 잘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보수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2년 후의 시대적 과제가 딱 보수정당의 몫이라는 점에서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좌파 정부의 경제 실정과 코로나로 인한 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누가 차기 정부를 맡는 것이 적합한지 웬만한 수준의 국민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소득주도성장이나 세금만 퍼붓는 뉴딜 정책으로 경제 회생이 가능한지, 규제 완화나 정부 축소 등 자유시장경제 원리의 접근 방식이 합당한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과 아닌 사과나무 나눠주는 사람 뽑아야

그는 2년 뒤 있을 대선의 시대정신을 ‘경제 회생’으로 보고 있었다.

“지난 대선에선 ‘적폐청산’에 국민이 동의했다. 차기 대선은 ‘경제회생’이다. 선거까지 2년 남았다. 짧은 기간이다. 이 기간에 정부 여당은 좌파 체제의 완성을 향해 제도 마련에 매달릴 것이고, 세금 퍼붓는 식의 경제 정책이 이어지겠지만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기 대선은 한국 경제 회복을 두고 국민 앞에서 좌파, 우파 간 대토론이 벌어져야 한다. 김종인 박사가 ‘40대 경제인이 국가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왜 그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 금년 말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다. 그 결과가 한반도 정세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외교·안보가 대선 이슈가 된다고 해도 보수는 밀리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보수 정당의 대통령이 탄핵된 후의 선거였으니 진보 세력의 집권이 순리였다. 이번에 진보 정당이 경제와 국민 상식을 무너뜨린다면 차기는 보수 정당의 집권이 순리 아니겠는가.”

- 집권당이 또 돈 봉투를 흔들어댄다면?

“현명한 국민들은 사과를 나눠주는 사람이 좋은지, 사과나무를 나눠주는 사람이 맞는지 구분할 것으로 본다. 어떤 정치 세력이 진짜 애국자이고 국민을 위하는지 구분해 낼 것이다. 남미로 갈 것이냐 선진국가로 갈 것이냐의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 180석 거대 여당의 향후 전망은?

“힘이 생기면 쓰고 싶은 게 권력의 속성이다. 제어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힘 있다고 힘자랑하기 시작하면 패망의 길로 접어든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이해찬 대표가 잘 경고했다고 본다. 민주당이 이것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겸허한 자세로 이념정치를 버리고 그 힘으로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한다면 자신들도 예견치 못한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헌법? 쉽지 않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 문재인 정부를 이념적으로 사회주의라고 봐야 하나.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문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이념적 지향을 명확히 밝힌 것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친중, 친북주의자가 많이 포진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 운동권 세력이 주축 아닌가. 정책에서도 그가 ‘사회주의자다’라고 말할 만큼의 뚜렷한 것은 없어 보인다. 앞으로 헌법 개정을 해서 사유재산권 문제에 손을 댈지는 알 수 없다. 노동자가 우리 사회의 주류라고 언급한 것도 노동절에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의 레토릭이라고 본다. 만약 사회주의를 꿈꾼다면 헌법 개정을 통해 실현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단순한가.

여담이지만 바둑을 즐기는 정치인들에게서 남과 구분되는 리더십을 볼 수 있다. 바둑을 즐기는 이들은 대체로 도전적 리더십이 아닌 방어적이고 실수를 극소화하는 신중한 스타일이 많다. JP(김종필), 이인제 등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의 바둑 실력이 아마추어 4단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문 대통령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사회주의로 전환할 만큼 무모한 사람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 386운동권의 정치권 진입 이후 무엇이 달라졌다고 보나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1970년대 중반쯤 당시 노재봉 교수가 동아일보에 기고를 했다. 이념 투쟁하는 학생들을 보며 언젠가 저들이 우리 정치의 주류로 나서게 될 때가 있을 것이라며, 그것을 우려하는 취지의 글을 썼다. 벌써 45년 전이다. 그런데 지금이 노 교수가 얘기한 바로 그때다. 그들이 정치의 주역이 된 지금 우리 정치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긍정적인 면이라면 정치가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반면에 변칙에 능하고, 선전선동을 잘하며, 편 가르기를 당연시하고, 몰상식이 상식을 대체하며 막말이 일상화했으며, 요설가만 있지 웅변가는 없다. 한마디로 정치가 전반적으로 살벌해지고 천박스러워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이 386정치의 민낯이다. 그들이 국민의 정치 혐오를 높여놓았다는 비판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 기사를 검색해 보니 ‘음지의 전략가’란 말이 나오더라.

“선거 자문하는 사람이 음지에 있어야지 앞에 나서서 떠들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선거전략가란 말도 언론이 붙여준 별명이다.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먹고살기 위해 여론조사 회사를 설립했고,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선거에 임하는 정치인들의 자문에 응했을 뿐이다. 선거 참여는 1노3김 선거(1987년 대선) 무렵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어언 1세대가 돼 있었다.”

- 선거를 내다보는 어떤 촉이 있나.

“여론조사 결과보다 직관에 의한 예측이 더 정확할 때가 많았다. 그건 순전히 경험에 의한 동물적 감각이라고나 할까.”

- 지금은 자유인이다.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던가.

“(올해 100세인) 김형석 교수가 인생은 65세 이후부터라고 했던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 어떤 의미에서?

“옛날엔 앞을 보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뒤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이제야 사람과 세상이 보이는 것 같다. 철이 들었다고 할까. 경험이 곧 재산이고 자신감이더라.”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20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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