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동일노동 동일임금’과 正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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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임금 법제화, 기대와 우려 교차
대기업-中企 임금격차는 차별의 문제로 접근해선 안돼
하청구조 개선 등 실질 방안 찾아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자리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중 핵심 정책이다. 그것도 ‘비정규직 제로’와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슬로건에서 나타나듯이 일자리의 양보다는 질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인건비 증가는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 대신에 공무원 등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로 양을 늘려 청년층의 일자리 수요에 대응하려는 것 같다. 노동시장 양극화의 또 하나의 주범인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고용 형태에 관계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적용을 법률에 명문화할 방침임을 천명했다. 비정규직 사용을 억제하고 동일임금 원칙을 보장하면서 민간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 일자리위원회의 앞으로의 행보와 활약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등 원칙은 각국의 법적 전통과 법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법제도에 대한 공통의 기반을 형성했다. 평등과 정의는 서로 불가분으로 연결돼 있다. 평등 원칙은 어떤 분쟁 사례의 시비를 가리기 위한 최종적인 판단 기준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평등 원칙은 정의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근로자를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정의의 관점에서 노동법의 오래된 고민이었고, 그에 따라 차별 해소를 위한 법제도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무엇이 정의인가’는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된 오랜 논쟁 주제였지만 여전히 일반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에 관계없이 최소한 동의하는 부분은 ‘같은 것은 같게’ 취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차별 금지에 관한 사상적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제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우리 현행법에서는 남녀고용평등법에 유일하게 규정된 원칙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성별에 관한 균등대우 원칙의 하나로 승인돼 있을 뿐 고용 형태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예는 없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최저임금 다음으로 강력한 임금 통제 및 시장 개입 수단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법률이 직접 사용자가 지급해야 할 임금액의 하한선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사용자가 특정 근로자 집단에 대해 결정한 임금액을 동일한 노동을 제공하는 다른 속성을 가진 근로자 집단에도 똑같이 지급하라는 명령이다. 이 원칙은 임금 지급의 결정 방식과 절차, 임금액 결정의 다양한 요인을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임금 결정에 대한 가장 강력한 규제를 의미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이나 우리나라의 기간제법 등 비정규직법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직접 규정하지 아니하고 당사자의 임금 결정의 자유를 존중하되, 합리성 기준에 의한 통제를 가하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 금지’라는 불이익취급 금지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차별의 문제가 아니다. 평균적으로 중소기업의 근로자는 대기업 근로자보다 약 40%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 정부 통계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부지기수이다. 장기간에 걸쳐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인상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에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 인상률은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임금 격차는 지급주체(사용자)가 다르기 때문에 법률상 차별로 볼 수 없다. 이러한 격차 발생의 주된 원인이 원청과 하청기업 간의 불공정 거래라는 지적이 많다. 또한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임금 인상이 격차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마도 지금과 같이 5차, 6차에 걸친 다단계 하청구조를 한두 단계만 줄여도 임금 격차를 대폭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하청 근로자 간의 임금 등 근로조건 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시정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자리정책의 핵심 과제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란 것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그 의미는 사실상 도급 또는 용역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직접고용),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라면 지나치게 이념적이거나 안이하다는 평가밖에 나오지 않는다. 몇 단계를 뛰어넘어 검증되지 아니한 처방전을 내놓기보다는 노동시장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면서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실용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또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노동시장 및 노동정책의 입안자들이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접근해 주길 기대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동일임금 법제화#일자리정책#비정규직#최저임금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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