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자동차 정비인생 30년… 미래 대비해 전기車 정비교육도 받았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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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자동차 수리 전문가 오봉진 씨

오봉진 신풍카 대표는 인젝터 등 경유차량의 핵심 부품 수리를 위해 직접 장비를 제작하며 독자적인 기술을 정립했다. 환경에도 관심이 높아 제주지역에서 처음으로 배출가스 전문정비업체 허가를 받았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오봉진 신풍카 대표는 인젝터 등 경유차량의 핵심 부품 수리를 위해 직접 장비를 제작하며 독자적인 기술을 정립했다. 환경에도 관심이 높아 제주지역에서 처음으로 배출가스 전문정비업체 허가를 받았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8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T골프장 인근 평화로. 양모 씨(47)의 4륜구동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뒤편에서 갑자기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속 80km 내외를 유지하던 속도는 뚝 떨어졌고 ‘퍽∼ 퍽∼’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차체가 덜컹거렸다. 위험을 감지한 양 씨는 갓길에 차량을 세웠다. 시동을 껐다가 다시 켜도 마찬가지였다.

차량을 구입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양 씨는 엔진오일, 공기필터 등을 주기적으로 교체했다. 그동안 타면서 전혀 이상한 낌새가 없었는데 의아했다. 근처엔 자동차정비소는 물론이고 인가도 없었다. 1시간이 지나서야 견인차가 도착했다. 견인기사는 “인젝터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인젝터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던 양 씨는 견인기사의 추천을 받고 제주시 내도동 정비업소 ‘신풍카’로 향했다.

오봉진 신풍카 대표(52)는 차량을 점검한 뒤 역시 “인젝터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인젝터는 연료를 안개보다 더 미세하게 분사하는 장치로, 전자제어 차량의 핵심 엔진 부품이다. 이틀 뒤 차량은 수리를 마쳤다. 자동차회사 정비업소에 갔다면 통째로 교환을 했어야 하고 상당한 비용을 치렀겠지만 오 대표 손을 거치면서 절반 값에 수리가 됐다. 제주지역에서 인젝터를 신제품에 가깝게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오 대표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 경유차 수리 독자 기술 개발

신풍카 2층의 6m² 남짓한 공간은 오 대표의 전용 작업실이다. 테스트 장비를 비롯해 현미경, 부품세척기, 계측기 같은 각종 장비가 즐비했다. 자동차회사 연구실을 방불케 할 정도다. 일반 차량수리업소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인젝터의 컨트롤밸브를 조정하는 장비, 표면을 매끄럽게 만드는 연마제는 직접 만들기도 한다. 연료 분사량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노킹(이상 연소에 의해 소리가 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3개월 전 완벽하게 잡아내는 수리 기술을 개발했다. 이 장비들과 오 대표의 꼼꼼한 기술이 결합하면서 불량 인젝터는 신형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재탄생한다.

오 대표는 인젝터 외에도 경유차량 핵심 부품으로 고압 연료펌프의 압력을 제어하는 인렛미터링밸브(Inlet Metering Valve) 수리에도 공을 들였다. 이물질 등이 끼어 밸브가 막히거나 손상되면 출력이 부족해지고 심하면 시동이 꺼진다. 1년여 동안 독자 개발한 클리너는 부품 표면에 생긴 스크래치 같은 손상 부위를 말끔하게 제거해 원상으로 복원해준다.

“힘이 좋고 진동이 덜한 커먼레일(CRDI) 엔진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핵심 부품인 인젝터 등의 고장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기술을 배우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핵심기술은 절대 가르쳐주지 않더군요. 기계, 장비와 홀로 씨름하면서 독자적으로 기술을 만들었습니다. 차량 운전자들이 가능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부품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경유차량을 주로 수리하면서 배출가스 같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불완전 연소한 배출가스는 미세먼지를 만들어낸다. 유해성분인 질소산화물은 경유차량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오 대표는 2015년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배출가스 전문정비업체로 허가를 받았다. 제주 1호이고 지금까지도 유일하다. 전례가 없었기에 허가를 받는 과정도 힘들었다. 기준을 초과한 배출가스가 발생하는 원인을 정확히 잡아내서 수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멈추지 않는 도전

오 대표의 30년 정비인생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서귀포시 성산수산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했다. 어머니의 권유로 1987년 농민교육원 농기계과 과정에 들어가면서 자동차와 인연을 맺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다르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자동차를 만지는 게 무척 재미있었다. 수료 후 택시회사에서 차량정비를 했다.

“포니, 맵시나, 로얄 같은 당시 자동차를 대부분 익혔습니다. 제주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차량정비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다 지인의 소개로 서울 강남의 공업사에 취직했어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전자제어, 오토미션 등을 익혔고 전자학원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차량이 새로 나오면 정비 책자도 나오는데 한 권에 400, 500페이지 정도였습니다. 정비 책자와 씨름하며 기술을 다졌습니다.”

‘홀로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1997년 제주로 귀향했다. 그해 결혼을 하고 동업자와 함께 정비업소를 차렸다. 동업은 힘들었다. 업소 운영보다 정비기술을 우선시하다보니 마찰이 생겼다. 여러 차례 동업이 실패로 끝난 뒤 지인의 도움으로 땅을 빌려 독립했다. 불철주야 일했다. 새벽까지 차를 고치다 동이 트면 그때서야 집에 가서 한두 시간 쪽잠을 잔 뒤 다시 출근했다. 오 대표의 열정을 믿고 차량을 맡기는 고객이 늘어갈 즈음 또다시 위기가 닥쳤다.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면서 지인이 빌려준 업소 땅이 팔린 것이다.

눈물을 삼켰다. 정비사업 독립을 포기하고 월급을 받는 공업사에 취직할까 생각도 했다. 아내 양영희 씨(48)의 든든한 지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내는 열두 번 이사를 하면서도 가정을 지켰다.

지금의 자리에 업소를 차린 뒤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오 대표는 쉬지 않는다. 완벽한 정비를 위해 그동안 장비 구입에만 2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 현대·기아자동차에 없는 것도 갖추고 있다. 3일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차에 매달린 적도 있다. 지금까지 수리를 못하고 돌려보낸 차량은 없다.

오 대표는 최근 한국폴리텍대에서 전기자동차 정비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전기자동차가 한 번 충전에 2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앞으로 제주에서 휘발유, 경유로 다니는 차량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쉰이 넘는 나이에 강의실 문을 두드렸다.

“자동차는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삶의 이유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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